퇴직을 실감한 것은 퇴직 후 거의 여섯 달이 지난 8월 말이었다.
그해 2월에 퇴직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옥스퍼드에 갔다. 옥스퍼드에 있는 동안에는 새로운 환경에서 긴장을 하고 지내서인지 퇴직을 실감하지 못했다. 공부를 하는 남편을 따라 낮에는 옥스퍼드 시립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다. 나름 루틴이 단순하고 일정했다. 마음에서 퇴직이 유보된 상태였던 거 같다. 7월 말에 한국에 돌아왔다. 이 때는 방학기간이라 퇴직 전 방학을 보내는 것과 비슷했다. 적당히 게으름도 피우고 사람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8월 말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밖을 보고 있었다. 퇴직 후 한가로운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보였다.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아 모두들 출근하는구나’ 문득 나는 이제 출근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울컥했다.
퇴직을 하기 전, 먼저 퇴직한 대부분 사람들은 퇴직 후의 삶에 대해 만족한다고 말했다.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다고 했다. 더구나 교사들은 연금이 여유 있는 편이라 ‘연금의 행복’을 아냐며 자랑하던 친구도 있었다. 명퇴 전에는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학교 쪽으로는 눈도 돌리기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후회가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 좋은 시절을 일찍 시작하지 못해서. 막상 나와보니 놀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아 현타가 왔다는 선배도 있었다.
물론 퇴직 후 생활에 만족하는 많은 퇴직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명퇴를 했음에도 막상 직장이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그만두었다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났다는 것, 더 이상 성취하거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다는 것,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는 실감이었다.
‘아, 퇴직 이후의 삶에 준비 없이 던져졌구나’
퇴직을 하기 전에 미리 퇴직 후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경우는 교직 생활 마지막을 한 발만 걸친 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퇴직 후 남는 것은 시간뿐 아닌가? 퇴직 후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 교사를 하는 동안은 여기에 충실하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퇴직 후의 생활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내가 교육과 학생에 대해 환멸은 느껴 그만둔 것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옥스퍼드에서도 학생들을 보면 반갑고 귀여웠다. 한국에 와서도 길가에 학생들이 장난치며 걸어가면 그것도 예뻐 보였다. 아이들도 좋았고 학교 생활도 나름 재미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내가 교육에 대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의미와 열정대신 월급쟁이로 교사를 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보다 조직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깨달음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직이 자유를 제한하는 억압기제로 느끼겠지만 나는 조직을 나를 실현할 수 있는 무대로 여겼던 것 같다. '세상은 바꾸지 못해도 내가 속해 있는 직장이라도 바꾸자'. 이것이 나름 직장에 대한 나의 스탠스였다. 작은 조직이었지만 내가 속한 학교 문화나 분위기를 개선하려고 늘 시도했기 때문에 나에게 조직은 그리 억압적인 장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소위 자아실현의 장이 마감되었다는 실감이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놀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려서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피아노 한 번, 그림 한 번 배워보지 못했다. Tv도 없던 시절, 그나마 책이 유일한 취미라면 취미일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닐 때도 직장과 육아로 내 개인 취미라는 게 없이 지냈다. 여행도 그 자체를 즐겼다기보다는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보낸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운동은 젬병이라 즐기기보다는 의무감으로 대했다. 그러니 남은 게 여가밖에 없는 퇴직 후 생활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예전처럼 평균수명이 길지 않다면 부담 없이 쉬면 될 거 같다. 그러나 지금은 평균 30년의 세월이 남아 있다. 이전에 읽었던 책에 이런 일화가 있다. 대학 총장을 끝으로 퇴직한 분의 이야기이다. 40여 년 전이라 평균수명이 70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퇴직 후 삶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고 계획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30여 년이 흘러 90이 넘어서도 살아있더란다. 이렇게 남은 삶을 허비할 수 없다며 그 나이에 영어공부에 도전했다. 그러고도 8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시대다. 러프하게 말하면 30년 사회진출을 준비하고, 30년 일하고, 30년 은퇴 후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은퇴 후 인생의 새로운 과제가 등장한 것 같다. 이제 고민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