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세상이 마냥 흐려 보이고
사람들이 모두 그저 그럴 때,
수줍게 손 내민 니가 있어서
내 심장은 부풀다 못해 굳어가고 있어.
붉은 전선을 움키고 있는 도시 비둘기처럼.
만일
오며 가며 쭈뼛한 너의 몸짓과
아카시아 같은 수줍은 눈인사 속에
너를 예감했었다면 나는 감당이나 했을까?
장미꽃 선물에도 무심했던 오래전 애송이처럼.
이젠
커질 대로 커진 풍선 같은 내 심장은
너를 닿아야만 살 것 같고,
시간을 죽이고 싶을 만큼 세상이 좋아진
나의 변덕에 부끄러운 실소(失笑)만 가득해.
지도가 없어도 좋아
산이든 바다든 길을 낼 용기가 생겼으니까
다 잃어도 힘을 잃지 않아
너는
내가 있어서.
나는
니가 있어서.
P.S
사랑의 감정은 시작과 함께 불꽃처럼 타오르며, 물리적으로 서로를 더욱 가깝게 만든다.
세상의 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서로를 생각하면 올라간 입꼬리에 핑크 빛이 도는 남녀의 '사랑'은 삶의 1순위가 된다. 바로 이때가 가장 '사랑다운' 때가 아닐까 싶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하늘을 보다가도
보고 싶은 욕구가 고드름처럼 예쁘고 예민하게 자라난다. 이렇게 세상 모든 사랑의 시작은 순수하고 애틋하고 짜릿해서 누구에게든 소중하다.
내게도 이런 감정과 전율이 다가온 것이다.
회의 중에도 그녀의 이름을 끄적이게 되고, 중요한 일이 꼬였는데도 그럴 수 있다는 지극히 긍정적인 나의 자비(慈悲)가 가끔 재수 없다.
사실 나는 시간관념이 정확한데도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보도블록 틈으로 자라는 노란 야생화에도
마치 부처(佛陀) 인양 위로와 응원의 감정이입이 격해진다. 한마디로 세상이 '내 것 인양' 어깨에 한껏 뽕이 차오른다.
니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