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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Sep 30. 2018

어쩌면 너무 흔한 이야기

하지만 쉽게 쓸 수 없었던 편지

오늘도 깊은 밤이네요. 요즘 들어 밤낮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하루는 바뀐 바이오리듬을 바로 잡으려고 밤새 유투브 채널을 보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데 하필 그 날 생리통이 겹쳐 거의 기절 상태로 12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말짱 도루묵이 되었어요.

오늘 보내는 편지는 어쩌면 너무 흔하지만 쉽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은 척 꺼내보려고 해요. 원래 남의 속마음을 훔쳐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으니까요.


퇴사하고 이직 준비를 하며 가장 많이 느낀 건 첫 번째 취업이 결정되자마자 다시는 하지 않을 거야! 했던 자소서 작성과 면접을 아주 열심히 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웃기고, 매우 귀찮은 일이라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경력을 쌓으며 이런 과정이 이번 한 번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또 한 번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제가 일할 자리를 찾으면 이 시간이 엄청 그리워질 것 같아서 최대한 많이 쉬고, 최대한 많이 무엇이든 만들어 보고 싶어 열심히 꼼지락 거리고 있어요.


근데 하도 집에만 있다보니 글씨를 자주 써야지! 하다가도 깜빡 잊고 방 정리를 하기도 하고, 방 정리를 하다보면 책을 읽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해요. 그러다보면 또 어느 새 글씨를 쓰고 있기도 하구요. 가끔은 정신차리고 보면 열심히 자소서를 쓰고 있기도 합니다. 뚜렷한 하루 일과가 정해져 있지 않은 백수의 일과는 이래요.

어느 날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봤어요.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삼은 사람들은 돈이 물처럼 빠져나간다고. 잉크 사랴 종이 사랴 심지어 손이 굳어버리면 다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부지런해야하구요.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니구, 요새 아이패드로 작업하시는 작가님들이 많이 보여서 저도 진짜 정말 너무 갖고 싶은 아이패드지만, 아날로그 작업을 좋아하는터라 아이패드 있어도 또 아날로그 작업을 할 것 같기도 하궁.
그래서 제가 취업을 하고나서 제일 먼저 사고 싶은 건 에어팟이에요. (기승전 에어팟)

지지난주였나, 주말에 동네에서 하는 아나바다마켓에 나갔는데 꽤 재밌었어요. 퇴사하고 내내 방정리를 하면서 쓰지 않는 것들을 모아둔 박스가 있었는데, 그걸 들고 나갔거든요. 진짜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판매했더니 거의 다 팔고 빈 박스로 집에 왔어요. 엄마가 이 가격이니까 팔리는 거 아니냐면서 면박 줬는데, 뭐 어때요- 어차피 집에 있으면 자리만 차지하고 어느 날 누군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주거나 버리려다 다시 또 어딘가 쳐박아뒀을텐데. 저는 버리는 걸 아직도 잘 못하거든요. 차라리 누군가 이 물건이 필요할 것 같은 사람에게 주는 게 마음이 편해요.


워낙 물건에 추억을 많이 담는 사람이라 누군가 제 물건을 사가는 걸 보고 잘가, 하고 마음 속으로 인사했어요. 특히 오랫동안 아주 잘 사용했던 물건들은 또 남다른 느낌이 들어서요. 또 다른 주인을 만나 그 사람과 또 다른 추억을 이어가겠죠, 신기하게도. (그런 물건들은 팔고 워너원 포스터 사온 건 안비밀)


10월에 또 아나바다 마켓이 있다고 해서 시간 나는대로 방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정리하다보면 문구 덕후 아니랄까봐 여기저기서 한 두 장쓰고 넣어둔 거의 새 것 같은 수첩들이 나오곤 해요. 어젠 2013년도에 썼던 수첩을 발견했는데 맨 앞에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이라는 버킷리스트를 발견했어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가장 친한 친구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구입했던 수첩인데, 친구가 당시 버킷리스트를 적으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며 저에게도 추천한 방법이었어요. 친구도 적고 나서 잊어버렸는데 이루었던 것들이 있어 우선 적고 보라고, 적으면 어떻게든 실천하게 된다고 이야기해줬었거든요.


그리고 5년 만에 열어본 버킷리스트에는 이미 한 것들도 있고, 아직 진행 중인 것들도 있었어요. 아주 신기한 것은 적고 나서 잊어버렸는데 정말 시작한 것들이 있더라구요. 너무 신기해서 다이어리에 옮겨 붙였어요. 이젠 정말 버킷리스트를 적어야겠다 싶어서 그 다음으로 적은 건 <내 집 마련의 꿈>. (갑자기 너무 거창하고 자본주의적인 버킷리스트)


오랜만에 작업하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 시간이 되어버렸어요. 끄적끄적 적다보니 밤이 많이 깊었네요. 다음에 또 안부 전할게요. 날이 많이 차가워졌어요. 따뜻한 주말 밤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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