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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시실에서 피어난 대화: 나와 유물이 들려준 이야기

전시실의 첫 기억

by 정유선

국립나주박물관의 전시해설은 나에게 단순히 일을 넘어선 특별한 사명감을 주었다. 유물 앞에서 관람객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질문에 답하며 나눈 대화들은 하루하루 나를 성장시키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 책으로 엮고자 한다.

전시실의 첫 기억

처음 전시해설을 맡았을 때, 관람객들 앞에 서는 일이 낯설고 긴장되었다. 특히, 나주 반남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에 대해 설명하던 날, 한 어린아이가 물었다.
“왜 무덤에 이런 예쁜 물건들이 있었어요?”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고분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떠올리며 설명하기도 전에 그 아이의 순수한 질문은 유물이 지닌 의미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소중한 물건들을 함께 묻어 새로운 세상으로 보냈지.”
그 대답에 아이는 “마치 선물이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나에게도 그 웃음은 유물이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관람객과 함께한 순간들

어느 날 한 어르신 관람객이 유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어떤 점이 가장 눈에 들어오시나요?”
그분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 빛깔이 참 그리워요. 젊었을 땐 이런 걸 자주 봤는데….”라고 답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유물은 단지 과거의 산물이 아닌 누군가의 추억과 감정을 건드리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날의 대화는 관람객뿐 아니라 나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전시실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서 유물은 관람객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내가 해설자로서 경험한 수많은 순간은 단순한 업무 기록이 아니라, 유물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이 함께 엮어낸 이야기가 되었다.

이 책은 그 이야기들을 담아낸 기록이다. 유물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고, 대화 속에서 역사를 재발견하며, 때로는 그 순간을 통해 나를 돌아본 이야기들.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도 전시실에서 느꼈던 생생한 울림과 공감을 전달하고 싶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당신도 나와 함께 전시실을 걷고, 유물과 대화하며, 역사의 숨결을 느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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