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선으로 다시, 인생을 시작하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불렸다. ‘아줌마.’
(아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시장에서도, 아이 학교 앞에서도, 동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나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그리고 그냥 ‘아줌마’라는 말속에 숨어 있었다.
그 속에는 내가 품었던 꿈도, 가슴 깊이 접어둔 감정도, 나만의 고유한 색도 조용히 묻혀버렸다.
언젠가부터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불렀고, 나도 자연스레 그 부름에 반응했다.
살림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의 일상을 조용히 지탱하는 사람.
그 역할에 충실한 만큼, 나는 조금씩 나를 잃어갔다.
서류를 작성할 일이 생기면, 직업란에는 망설임 없이 ‘주부’라고 적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나는 나 스스로를 그 틀 안에 가두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내 이름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아이들은 ‘엄마’ 시댁에서는 ‘누구 엄마’로만 불렸다.
예전엔 시어머님조차 내 이름을 부르신 적이 없었다.
그게, 그냥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암이라는 이름의 문턱을 넘었다.
낯선 병원과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마주해야 했다.
항암 치료 중 우연히 참여하게 된 영상 수업.
강사님이 출석을 부르며 내 이름을 불렀다.
“정유선 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순간, 나를 부른다는 사실조차 실감하지 못했다.
너무 오래, 내 이름은 세상에서 잊혀 있었으니까.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네… 저예요.”
그 짧은 한마디가 내 안 깊은 곳을 울렸다.
나는 다시, ‘나’로 불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정유선 작가님, 이번 영상 정말 감동이에요.”
“정유선 감독님, 다음 기획도 기대돼요.”
그 말들 하나하나가, 무너졌던 내 마음의 조각들을 조용히 모아주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삶을 담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나는 ‘아줌마’가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내 안의 목소리도 되살아났다.
이제는 누군가의 마음을 다룰 수 있을 만큼 내 마음도 충분히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중심엔 잊고 지냈던 한 이름이 있었다.
“정유선.”
내가 태어난 날, 부모님이 정성스레 지어주신 이름.
이제 나는 그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님이 내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유선아.”
그 짧은 호칭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너무도 오랜만에 듣는 내 이름.
그래, 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지.
누구의 뒤에 숨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지.
누군가 “아줌마!” 하고 불러도,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제는 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안에 담긴 진심을.
그 진심이 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것을.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내가 꿈꾸는 일 속에서,
나는 다시 내 이름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