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 피어난, 나의 새로운 시작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암입니다.”
의사의 짧은 한마디에 내 시간도, 내 몸도, 내 모든 미래도
숨을 멈춘 듯 고요히 정지되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왜 하필 나일까.
가족을 위해 내 삶을 덜 어내며 살아왔는데,
삶의 반을 막 지난 이 시점에 찾아온 고통은
서럽고 억울했고, 무엇보다 낯설었다.
병원 침대 위의 날들은 예상보다 느렸고,
그만큼 더 고요했다.
약봉지가 머리맡에 차곡히 쌓여가고,
마음 한편에는
‘이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차가운 절망이 천천히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암이 재발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미 끝난 사람처럼, 희망이 사라진 존재처럼
나를 바라보며 너무도 쉽게 말했다.
“병실에서 치료나 받지, 그런 걸 왜 해요?”
그 말은 이렇게 들렸다.
“당신은 이제 끝났어요.”
숨이 턱 막혔다.
정말 나는, 여기까지인 걸까?
그때, 내 안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아니야. 넌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 목소리를 붙잡게 만든 단 하나의 이유—
바로 ‘엄마’라는 이름.
아직 너무 어렸던 내 아이들.
그 아이들을 두고 나는 결코 떠날 수 없었다.
나는 살아야 했다.
엄마이기에, 삶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10주년 기념 영상)
삶의 소음이 멎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 안에서 아주 작고도 선명한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질문.
“암이라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꿈’이라는 걸 꿔봤을까?”
그 질문 앞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데 급급했을 것이다.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살아가느라
‘나’라는 이름은 늘 가장 나중에 불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항암치료 중 병실에서 무심히 인터넷을 뒤적이다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의 영상 수업 공고를 보게 되었다.
별생각 없이 눌렀던 그 접수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줄은,
그땐 몰랐다.
‘나도 해볼 수 있을까?’
망설이며 문을 열었고,
그 안에서 나는 다시 살아나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서툰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편집 프로그램 위에 내 감정과 호흡을
한 프레임씩 정성스럽게 얹어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병든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기록자였고, 이야기꾼이었고,
무엇보다 내 안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이었다.
어떤 날은 치료 중에도 병실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꽂고 영상 편집을 이어갔다.
통증이 온몸을 휘감고, 눈물이 앞을 가려도
나는 끝까지 마우스를 놓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병실 사람들조차
“아픈데, 그만하지”라며 걱정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나를 잃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 고통을 견디며 끝까지 해낸 내가,
스스로도 대견했고,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만든 영상이 시청자참여프로그램 공모전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에서 우수상(SBS 사장상)을 수상했고, 전라남도 보물찾기 영상 콘텐츠 부문에서도 최우수상이라는 값진 결실로 이어졌다.
수술과 치료를 도와주신 교수님,
항암치료를 함께해 주신 의료진,
그리고 내 곁을 지켜준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가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주셨다.
“당신은, 내가 치료한 환자 중
가장 강한 분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회복을 보여주셨어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웃었다.
이제 내 눈물은 아픔의 것이 아니었다.
용기와 생명의 빛을 품은 눈물이었다.
나는 다시 건강해졌고, 더 단단해졌으며,
마침내 ‘나답게’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삶의 끈을 억지로 붙잡고 버티지 않는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해도,
하고 싶었던 일, 꿈꾸었던 일을 살아내는 지금이
진짜 내 삶이다.
그때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아마 눈물 젖은 미소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렇게 멋진 가능성이,
내 안에 숨어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