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그 시간들

당신의 이야기에 마침표 대신 쉼표를

by 정유선

카메라를 든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영상에 담기는 건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라는 걸.

그 온기는 말로 다 담을 수 없었다.

화면 밖으로도 스며들어, 마음의 결을 따라 오래도록 여운처럼 남았다.


나는 아직 영상의 초보자였지만,

누군가의 삶 앞에서는 언제나 진심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늘 먼저 눈을 맞췄다.

마음이 열리길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도 괜찮았다.

카메라가 켜지기 전에, 나는 먼저 그들의 ‘오늘’부터 들어야만 했다.


처음 카메라 앞에 앉은 어느 할아버지는

“내 얘길 누가 듣는다고”라며 고개를 떨구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흐르자,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나도 참 많이 살아왔구나.”

그 말을 하던 떨리는 목소리에는

세월이 겹겹이 쌓인 깊고 단단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짚신을 이어 만들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하던 순간,

그 노인의 눈가에 맺힌 눈물과, 숨결 사이로 묻어난 떨림을

나는 고스란히 렌즈 너머로 담았다.


짚신을 만드는 손길은 마치 기도하는 마음 같았다.

짚을 물에 적셔, 좌우로 조심스레 움직인다.

작은 도구 하나를 허리춤에 감고,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지푸라기를 꼬아간다.

시간이 쌓이고, 숨결이 얹히고,

그제야 짚신 한 켤레가 세상에 나온다.

“예전엔 말이야, 소를 끌고 먼 길 나설 땐 소한테도 집신을 신겨줬어.”

어르신의 목소리에는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 시절엔 짚이 곧 생활이었고,

짚으로는 지게의 어깨끈도 만들고, 소쿠리도 만들고,

때로는 짚을 엮어 우리나라 지도까지 만들어내셨다.


그가 보여준 작품들은 단순한 공예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흔적, 손끝으로 새긴 기록이었다.


나는 일주일 동안 어르신을 만나러 꾸준히 찾아갔다.

매번 짚 냄새가 은은하게 배인 작은 작업방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의 집 머슴살이 시절,

작은 골방에 홀로 앉아 짚신을 꼬며

고단했던 생을 견뎌내던 이야기.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단지 한 편의 영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긴 인생을 함께 통과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카메라 렌즈 너머로 그대로 담았다.

그 어떤 것도 덜어내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삶은 매끈하게 편집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진하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날 촬영이 끝난 뒤,

나는 한참이나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가 흘린 눈물,

잠시 스친 미소,

무심히 내민 손길 하나까지

그 모든 장면은

누구보다 용기 있는 기록이었다.


영상은 다시, 또다시 재생된다.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이 밀려온다.

그의 삶과, 내 삶이 조용히 포개지는 느낌.

우리가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우리가 모두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갔다.

어르신들의 지난날, 청년들의 방황, 주부들의 꿈,

그리고 이웃의 희망까지.

그 모든 시간이 내 카메라에 담겼고,

그 장면들은 지금도 내 마음 한가운데에

선명히 남아 있다.


나는 그들의 삶에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대신, 쉼표를 찍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다음 장면은 더 따뜻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함께 웃었던 시간들,

함께 울었던 장면들.

그 모든 순간이 결국 나를 자라나게 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기록한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영상은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 하나가,

또 다른 사람의 오늘을 지켜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진심으로.


그래서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쉼표 하나를 건넨다.

그리고 조용히,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이제 다음 장면으로 함께 걸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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