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던 나”
처음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이크 앞에 앉았는데,
그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꺼내고 있었다.
아무리 조용히 살아온 사람이라 해도,
가슴 깊은 곳에 말하지 못한 서사가 하나쯤은 있다.
마이크 너머 전해지는 목소리들 속에는
그 조용한 서사들이 고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라디오를 시작하면서 나는 매주 다른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걷다 보면
낯선 풍경 속에 꼭 한 조각,
내 기억과 닮은 장면이 숨어 있었다.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목이 메던 청년,
마흔이 넘어 처음 꿈을 좇기 시작한 중년의 여성,
그리고 은퇴 후의 고요한 시간을 사랑하게 된 어르신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였고,
나는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듯
그들의 말을 따라가며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 청취자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사람 이야기를 참 따뜻하게 들어주시네요.”
그 말이 그렇게 오래도록 가슴에 남은 건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이며
나는 나에게도 처음으로 따뜻한 청취자가 되어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을 듣고, 말로 전하는 일.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나는 내 안의 상처를 어루만졌고,
묻어두었던 아픔과 마주하며 조금씩 내가 살아온 시간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은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떨렸고, 더 자주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런 떨림과 눈물 속에서
나는 ‘말’이 사람을 살린다는 걸,
그리고 그 말의 진심은 반드시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는 걸 믿게 되었다.
라디오에 이어 나는 영상을 시작했다.
소리를 담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람들의 눈빛, 표정, 숨결까지 담고 싶어졌다.
단순한 인터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기는 영상.
그걸 만들기 위해
나는 촬영 전 많은 대화를 나눈다.
편안한 시간 속에서,
그 사람의 삶에 조용히 들어가 본다.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듣는다.
그제야 화면 안에 진짜 이야기가 녹아들기 시작한다.
나는 미리 설명한다.
촬영의 흐름, 장면의 배치, 인서트 컷의 의미.
그 사람의 동의와 이해 속에서
삶의 순간들을 조각처럼 담아낸다.
기획부터 섭외, 촬영, 편집, 내레이션까지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하기 때문에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완성된 이야기는 내 모든 열정이 담긴 작품이 된다.
내가 이 모든 걸 할 수 있었던 건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라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 장비, 따뜻한 스태프, 그리고
무엇보다 ‘시도해도 된다’고
나를 믿어준 공간.
어쩌면…
그곳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날 이후,
나는 삶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삶의 무대 위에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가 있었다.
이제 나는 말과 영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작고 단단한 증명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서 언제나 나를 마주하게 된다.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따뜻한 내 모습.
그렇게 나는
세상의 이야기 속에서
숨어 있던 나를 다시 꺼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