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마이크 앞에서 떨리던 첫 목소리

“여전히 떨리지만, 다시 마이크 앞에 선다”

by 정유선

처음 마이크 앞에 앉았던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눈앞에 놓인 마이크는 마치 나를 꿰뚫어 보는 거울 같았다.


무엇을 말했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목소리는 자꾸만 떨렸고,

말끝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흩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긴장과 떨림은 자꾸만 나를

다시 그 자리에 불러 세웠다.


‘한 번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라디오 방송.

어느새 두 번, 세 번…

잦은 초대와 요청이 이어졌고

나는 다시 마이크 앞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긴장됐다.

마이크 앞에 앉는 순간마다

익숙함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다.


방송 시작 5초 전,

심장은 콩콩 뛰고

손바닥은 축축이 젖어 있었다.

입 안은 바짝 마르고,

숨은 가슴 깊숙이 내려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기획과 출연으로 바쁘게 지내던 내게

또 다른 세계의 문이 열렸다.


그 문 앞에는 이○영 선생님이 계셨고,

나는 그 손을 잡고 망설임 없이

영상이라는 새로운 길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어 만난 최○지 선생님.

그분은 내게 영상이란 단지 카메라를 켜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말해주셨다.

아이템을 가지고

기획안은 어떤 구조로 짤지,

촬영 시나리오는 어떻게 스토리를 담을지,

편집은 어떤 흐름으로 이어가야 할지,

심지어 내레이션 원고를 쓸 때

어떤 톤으로 써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까지


나는 모르는 것을 물어가며,

하나하나 메모하고, 조심스럽게 배워나갔다.


그렇게 내 영상 속에는

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평범한 삶도 담기기 시작했다.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

누군가의 오래된 추억,

한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동네의 풍경들이

내 카메라 안에서 다시 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들은 나를 ‘정감독’이라 불렀다.


마이크를 잡고 인터뷰를 할 때마다

얼굴과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 긴장조차도 진심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간절함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작고 느린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떨림 속에서

나는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


여전히 마이크 앞에서는 떨린다.

하지만 그 떨림 덕분에

나는 오늘도 마이크 앞에 선다.


말이란,

마음을 건네는 다리이니까.

나는 그 다리 위에서,

다시 나를 건넌다.


방송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결국 내 안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라디오를 통해 세상을 만났고,

그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과 깊이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이크 너머 들려온 수많은 목소리들,

그 속에 조용히 섞여 있던 내 진짜 목소리.


그 목소리는 어쩌면

늘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나의 마음,

언제나 뒤로 물러서 있던 나의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통해

조금씩 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넌 지금도 잘하고 있어.”


마이크 앞에서 떨리던 첫 목소리는

이제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진심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 떨림이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그 떨림 덕분에

나는 매번 처음처럼,

진심으로 마이크 앞에 설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떨리지만, 다시 마이크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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