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목소리로 시작된 기적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고.
그 끝이 없는 순환 속에 내가 있었다.
몸은 지쳐 있었고, 마음은 더 지쳐 있었다.
가망이 없다는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
내 이름 석 자, 세상에 남기고 싶다.”
그때, 우연히 한 소식을 들었다.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개관.
내 가슴이 뛴 건 오랜만이었다.
방송.
잊고 살았던 꿈, 어릴 적 라디오를 들으며
마음이 따뜻해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몸 상태로는 멀리 갈 수 없어
예전엔 부산센터에 문의해 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광주.
내가 갈 수 있는 거리.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노트북으로 라디오제작단에 신청했다.
교육 당일,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나섰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붉고 핼쑥해진 얼굴,
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단단했다.
교육생들 사이에서 작은 수군거림이 들렸다.
“술 마시고 다니는 거 아냐?”
그 말이 내 귀에 정확히 들어왔다.
하지만 그보다 내 안에 있는 '열정'이 더 컸다.
“내가 누군지 보여줄 거야.”
3개월 과정.
각자의 주제를 정해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주제를 정했다.
‘암 투병 생활, 즐겁게 즐기기’
슬픔도, 고통도, 나는 다르게 기록하고 싶었다.
교육을 맡은 담당 선생님이 물었다.
“혹시 가족 중 아프신 분이 있나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제가 환자입니다.
직접 운전해서 올 때도 있고,
지칠 땐 택시 타고 오기도 해요.”
교실 안의 공기가 잠시 멈췄다.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다.
나를 단지 ‘약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내 프로젝트를 위한 중요한 인터뷰.
조선대학교 한 교수님을 찾아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교수님, 제 라디오 프로그램에
교수님의 진료실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환자를 대할 때 하시는 그 따뜻한 말들…
그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드리고 싶어요.”
한 교수님은 나를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실에 작은 녹음기를 켰고,
그분의 목소리는 마치 위로의 음악처럼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정유선 씨, 암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이겨낼 수 있어요.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그 말이 내 심장에, 청취자들의 심장에 닿기를 바랐다.
간호사님께도 부탁드렸다.
“제 이름을 불러주시면 돼요.”
병원에서 들려오는 그 일상적인 한마디—
“정유선 님, 주사 맞으실게요.”
그 말이 나에겐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따뜻한 증거였다.
라디오 제작은 생각보다 어렵고 고단했지만,
마음이 살아 있었다.
병원에서 만난 몇몇 환자 보호자들도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함께 해주겠다고 했다.
우리 팀의 이름은 ‘주부들의 수다’
고통 속에서도 수다는 꽃피었다.
병원, 보호자, 간호사, 교수님
모두가 함께해 주었다.
나 혼자였던 세상에서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날 이후, 세상은 달라졌다.
암이라는 짙은 어둠 속에서도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다.
내 목소리, 내 이야기, 내 이름 석 자가
작은 파문이 되어 퍼지기 시작했다.
길을 잃은 줄만 알았던 어느 날,
나는 뜻밖의 길 위에서
삶이라는 또 다른 기적과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