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점방차를 따라간 어느 날의 기적
어느 날, 시골 마을의 ‘모시잎 송편’ 이야기를 촬영하러 영광으로 향했습니다.
카메라 장비를 챙기며 기대도 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자 풍경은 다소 밋밋했고, 매력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고민하며 마을을 둘러보다가, 농협 창고 앞에서 태양초 고추를 다듬고 계신 할머님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도 슬쩍 고추 한 줌을 받아 들고 그 곁에 앉았습니다.
고추를 하나하나 따고 손질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할머님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마을엔 마트도 없으니까, 점방차가 한 주에 한 번씩 다녀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카메라보다 먼저 제 마음이 반응했습니다.
그날 반나절 넘게 50근 가까운 고추를 함께 다듬고, 시원한 음료 한 잔씩 대접해 드린 후에야, 저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촬영 아이템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운영되는 이동형 점방차, 그것이 이 마을의 진짜 이야기였습니다.
문제는 이 공동체의 설득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고, 만나자는 약속도 조심스럽게 잡고, 인터뷰 방식과 인서트 촬영 계획도 상세히 말씀드리며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촬영이 허락되었습니다.
이동하는 차량 내부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삼각대를 세울 수 없기에, 저는 몸을 브레이크 삼아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울퉁불퉁한 시골길 위에서 최대한 흔들림 없이 촬영을 이어갔습니다.
차가 멈추면 재빨리 문을 열고 내리며, 운전석에서 내리는 주인공을 담고, 사투리가 정겨운 어르신들의 얼굴을 렌즈에 담았습니다.
“엄니, 잘 계셨어요?”
“지난번에 미원 주문한 거 왔는가?”
설탕, 간장, 고추장, 계란, 프라이팬까지.
마트처럼 물건을 사전 주문받고, 어떤 어르신 댁엔 직접 배달도 해드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 댁엔 일부러 찾아가 드리고,
고맙다며 건네주시는 직접 담근 식혜 한 잔.
그 진심은 카메라 렌즈 너머로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또 다른 마을회관 앞.
어르신들은 물건도 사고,
“차린 건 없지만” 하시며
직접 지은 밥과 반찬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밥상에 저도 초대받았고,
묵은 배추김치를 길게 찢어
뜨끈한 밥 한 술에 얹어 먹는 그 한 입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따뜻한 순간입니다.
그 마을에 일주일 넘게 머물며,
아침 8시엔 도착하고, 9시부터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날, 점방차가 마을을 떠나 멀어지는 장면을 렌즈에 담으며,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어떤 내레이션으로 끝맺을지를 오래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영상은 전국공모전에 출품되었고,
운명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몇 달 뒤, 다른 촬영 중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우수상입니다.”
그 순간,
카메라 뒤에 서 있던 제 눈에서도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습니다.
마을 어르신들과 보낸 그 따뜻한 시간들,
고추를 다듬던 오후의 햇살,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흔들리던 마음들까지
모두 떠올랐습니다.
시상식이 있던 날,
상패와 상금을 받고
가장 먼저 공동체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받은 상입니다.”
천식이 있으셨던 공동체 대표님께
나주 배와 배즙을 선물로 드리고,
식사를 함께 나누고,
상금의 절반을 조용히 봉투에 담아 건넸습니다.
남은 절반은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나누고,
저는 단 10만 원만 챙겨
신발 가게로 갔습니다.
다음 촬영지에서 신을 편한 신발을 한 켤레 샀습니다.
이건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었기에,
보람과 감사만으로도
제 인생에서 가장 값진 하루가 되었습니다.
카메라 뒤에서
흘린 눈물 한 방울.
그건 그냥 슬픔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에 감동한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