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입맛 찾기

버스 타고 나 홀로

by 여행강타

봄의 전령이 기지개를 켰나 보다. 예민한 내 몸이 벌써 반응을 시작했다. 슬슬 어딘가 아파진다. 힘도 없고 입맛도 없다. 만사가 귀찮은 몸이 되었다. 이제 겨우 겨울을 보내려는 중인데 말이다.


따뜻한 봄이 오려면 거쳐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 삼월 어느 날이 될지는 모르지만 한 두 번의 눈이 더 내릴 테고, 꽃샘추위라고 하기엔 매서운 영하의 날씨도 남아있다. 그럼에도 예민한 몸은 계절의 기척을 기막히게 알아챈다.


제일 먼저 병원으로 달려가 영양 수액을 요청했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주사실 침대에 누웠다. 왼팔에 주사를 꽂고 링거 줄을 연결한다.

"불은 꺼 주세요."

부탁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깨면 조금이라도 나아져 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생각처럼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휴대폰을 켜고 인근 맛집을 검색했다. 혹시나 집 나간 입맛을 찾아줄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눈과 손이 부지런히 움직여 식당 한 곳을 골랐다. 평소에 생각지도 않고 즐기지 않는 메뉴, '감자 옹심이'다.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보는 순간 그냥 이거다 싶었다. 네이버 지도에 별표를 눌러 저장했다.


붐비는 시간을 피해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네이버 지도 앱을 열어 버스로 한 번에 가는 코스로 정했다. 그러다 보니 버스에서 내려 식당까지 제법 걸었다. 그래도 괜찮다. 낯선 거리에 있는 예쁜 카페나 꽃집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장 짧은 길을 안내해 주고, 내가 걷는 걸음까지 표시해 주니 길을 잃을 걱정도 없다.


소문난 집답게 늦은 시간임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감자 옹심이와 메밀 칼국수가 함께 나오는 '옹심이 칼국수'를 주문했다. 메밀 전병도 맛보기로 하나 시키고, 마음에 들면 포장해 가기로 했다.

"한 분 맞으세요?"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다시 확인했다. 맞다고, 전병은 맛만 보고 포장해 갈거라 말했다.


주문을 마치고 식당 내부를 꼼꼼히 둘러봤다. 식당 안 한쪽 문에 '당일 아침 생감자를 갈아 음식을 만듭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주방 앞에는 손질한 열무와 얼갈이배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제일 큰 고무 대야에 한가득 담겨있다. 주방 안에선 주문받은 메뉴를 조리하는 동시에 커다란 무를 채칼이 아닌 손으로 썰고 있었다. 모든 걸 손으로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서비스로 식전 보리밥이 나왔다. 직접 담근 열무김치, 무생채가 곁들여졌다. 이어서 메밀 전병이 나오고 옹심이 칼국수가 나왔다. 감자 옹심이 한 알을 입에 넣는 순간, 이십 년 전 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이 떠올랐다. 강릉시장 골목에서 어르신들이 감자를 즉석에서 갈아 전을 부쳐주셨다. 바닥에 앉아 주문과 동시에 만들어주던 그 감자전은 정말 별미였다. 지금도 그날의 시장 풍경과 맛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 보면 최고의 맛이었던 게 분명하다. 쫀득한 맛에 빠져 옹심이만을 골라 먹으며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감자 옹심이 한 그릇에 가출한 입맛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절 친구들과의 여행을 소환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먹는 양이 적은 나는 옹심이만 골라먹고, 남은 칼국수와 전병을 포장해 검은 봉다리에 넣어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집에서 삼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그곳. 조만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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