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순례

병원도 장자 속?

by 여행강타

"이걸 어쩌죠~"

"이리 와서 화면을 보시죠. 보시다시피 회전근개가 심하게 파열 됐네요. 이 정도면 참기 힘드셨을 텐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요? 수술 날짜 잡으시죠?"

"입원은 짧으면 3일, 길면 2주입니다. 보조기는 6주 동안 착용해야 하고요. 병원비는 500 정도 나올 겁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잘 모르겠어요. 좀 당황스럽네요. 오늘은 그냥 가겠습니다."


"간호사가 스케줄을 안내해 드릴 겁니다. 나가셔서 상의하세요."


상담 간호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주책맞게 나오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건네받은 휴지로 얼굴을 가리고 진정하려 애썼다. 간호사가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지만, 그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생각해 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명함을 받아 나왔다. 그 명함마저 병원비를 결제하면서 그곳에 두고 오긴 했지만.


11월 중순, 더는 어깨 통증을 방치하면 안 될 것 같아 집 근처 1차 병원 통증크리닉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열몇 장 찍고 나서야, 거북목에 디스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십견은 아니고 염증이 있는 것 같다며 어깨에 주사 여섯 대를 찔렀다. 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은 더 맞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 줄 알았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렇게 세 번에 걸쳐 주사 열다섯 대를 맞았다. 의사의 권유로 도수치료도 병행했다. 도수치료를 받고 오면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통증과 멀쩡함을 오가는 사이 석 달이 흘렀다.


바리스타 1급 시험이 끝나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속이라도 시원해지고자 2차 병원엘 갔다. 거금을 들여 목과 어깨를 따로 MRI를 찍었다. 그리고 검사 직후,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몰랐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무섭고 불안했다. 이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놈은 수술 날짜를 안 잡고 온 나를 나무랐다. 덧붙여 큰 병원부터 가보라 했다. 그때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이튼 날 MRI 영상을 복사해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원하는 과의 교수님이 진료가 없는 날이다. 며칠을 기다려 월요일, 진료 한 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있다가 진료를 받았다.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리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라면 이 경우 수술하지 않습니다. 회전근개가 파열된 건 맞지만, 주사와 운동으로 치료합니다."


"그러다 완전히 끊어지면 어떡해요?"


" 그럼 오히려 수술이 더 쉽습니다. 회전근개 파열도 문제지만 오십견이 더 심합니다. 약 2주분 드릴 테니 드시면서 운동장 가면 있는 팔 돌리기 하는 운동기구 돌리듯 천천히 돌리시고 팔 벽 타기 운동 하루 세 번씩 꼭 하세요."


사실 2차 병원에 이미 수술 날짜를 잡아 둔 상태였다. 바위 덩어리를 얹어놓은 것처럼 무겁고 아프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병원에서도 같은 말을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제발 수술만은 아니기를 바라고 빌었다.


한 손으로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을 AI에게 하소연하던 날도 떠올랐다. 그 시간들이 우습기도, 고맙기도 했다.


1차 병원에서는 나의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2차 병원에서는 수술을 강하게 권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힘들었고, 불안했고, 무서웠다. 대학병원에서는 달랐다. 너무 많은 주사를 맞았다며 부장용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주사도 주지 않았고, 치료도 권하지 않았다. 그저 2주일치 약처방과 스트레칭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도 마음도 이미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며칠이나 지났다고 설레발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루 세 번 약 복용과 스트레칭 만으로도 통증이 현저히 줄었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몇 년 전, 워킹화를 신고 산책을 나섰던 적이 있었다. 요즘처럼 꽃 같은 날씨에 취해 자갈이 제법 있는 길을 서너 시간 걸었고 족저근막염이란 질환을 얻었다.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 약, 물리치료, 비싼 충격파까지 받았으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바로 대학병원을 찾았다.


"약 드실 필요 없습니다."

"물리치료 안 하셔도 됩니다."

"시간 날 때마다 발가락 바깥쪽으로 꺾는 운동만 하세요."

"그리고 맞춤 깔창 넣어 신고 다니시면 됩니다."

그게 다였다.


대학병원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자주 오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병은 낫고, 마음은 편해졌다. 두 번의 큰 수술과 잦은 병치레로 병원을 드나들며 느낀 건 하나다. 사람들은 치료만이 아니라, 확신을 얻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예약은 몇 달 치씩 밀려있고, 진료를 보려면 아주 이른 시간부터 접수 대기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학병원을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여러 번 갈 것을, 한 번에 끝내고 싶어서다. 그리고 괜한 마음고생을 하고 싶지 않아서다.


이번 일을 겪으며, 처음 찾은 병원에서도 병뿐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다독여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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