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포 전 조카 녀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올해도 같이 건강검진을 받자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2년이 지난 것이다.
2년 전 3월 어느 날, 가족들이 서울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데 큰엄마인 나도 같이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떨결에 그러마 하고 약속을 했다. 기본 검사에 몇 가지를 추가해 4월 중순 강남에 한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모든 예약은 녀석이 알아서 해주었다. 전화상으로 일정을 알려줬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병원에서 다시 확인 전화를 했을 때도 그저 그렇다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한 층 안에 여러 검사실을 옮겨 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그동안 국가에서 실시하는 무료 검진만 받아 왔기에 금방 끝나곤 했는데, 조카 회사 지정 병원에서 받는 검사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종류도 많았다. 난생처음 받은 대장 내시경에 용종이 발견되어 전문 병원으로 옮겨 제거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다. 주위에서는 어떻게 그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안 받아봤냐고 했지만, 특별히 불편한 곳이 없었기에 미루고 있었던 것 같다.
막내 시동생의 아들인 그 녀석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살가웠다. 부모들끼리 친하게 지내서인지, 아니면 시동생이 영향이었는지는 몰라도 셋째 큰엄마인 나를 늘 챙겼다. 어릴 적 '어디 한 번 안아보자' 하면 스스럼없이 품에 안기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군대 가서는 휴가 때마다 PX (복지 마트)에서 영양제나 화장품, 위스키 등 사다 주며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그저 어른으로서 예뻐했을 뿐인데 한결같이 마음을 써주는 것이 늘 고맙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난주 금요일, 다시 검진을 받는 날이 왔다.
2주 전 대장 내시경을 위한 약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요즘은 알약으로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마셔야 하는 물의 양은 같다는 말에 그냥 기존의 약을 먹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물을 마시는 일이 유난히 힘들었다. 물에 약을 타 15분 간격으로 250ml씩 4번에 나누어 마시는 과정이 고역이었다. 다음엔 알약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 3일 전부터 흰 죽만 먹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식사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검사 과정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에 이번에는 병원의 지시를 철저히 따랐다. 그랬더니 첫날에는 당이 떨어져 온몸이 덜덜 떨리는 현상도 일기도 했다. 외출을 자제했고 모임이 있는 날에도 흰 죽을 담아 가야 했다.
예약 시간이 이른 관계로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한 번의 환승을 거처 강남에 있는 병원으로 이동했다. 물론 가는 도중 세 번의 화장실 이용은 기본이었다.
6시 40분 지하철에 올랐다. 앉을자리는커녕 서 있을 자리조차 비좁았다. 사실 그 시간에 사람이 그리 많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널널까지는 아니어도 앉을자리는 있을 줄 알았다. 비좁은 틈에 서 있으니 문득 지금까지의 내 삶이 얼마나 편했는지 돌아보게 됐다. 서있는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 시청 중이었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7시에 아들을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준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라기보다, 조금이나마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른 시간의 만원 지하철을 직접 겪어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겪어보고 당해봐야만 아는 것이 인생, 삶이다'라는 생각이 굳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출퇴근 지하철이 더 힘들다는 말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도 되었다.
7시 40분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마치고 검진은 시작됐다.
이름 대신 손목에 찬 번호표로 호명과 확인을 했다. 내 번호는 104번이었다.
키와 몸무게, 체성분을 시작으로 혈압, 심전도, 초음파, 흉부촬영, 유방촬영, 채혈, 위와 대장 내시경, 골밀도, 뇌 MRI, CT까지. 열다섯 개의 검사실을 오가며 검진을 마쳤을 때는 12시 20분이 되어 있었다. 길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병원에서 제공한 호박죽으로 속을 달래고 조카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는 집에 가서도 죽을 먹으라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흘 동안 버틴 나에게 작은 보상을 주고 싶었다. 조카가 보쌈과 막국수를 시켰다. 평소 즐기지 않는 음식인데 그날은 괜찮았다. 함께 먹어서인지 더 맛있었다.
시동생 가족은 잠깐의 휴식 후 시골로 내려갔다.
힘든 건강검진이 끝났다.
긴 하루가 조용히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