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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영수 May 17. 2024

[7]


불 꺼진 301호의 전등을 켰다. 그 여자가 담배가 필요해질 때면 301호의 창문을 올려다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침대에 누우니 안락함에 잠을 자고만 싶어졌다. 그러자 이 침대에서 내일 눈을 뜨는 이유가 그 부동산의 남자에게 가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명함을 찾아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다른 집을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내일 약속은 취소해 주세요. 같이 집 알아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마 답장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 어떤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 내가 선택했던 것, 요구했던 것과 부렸던 것들을 늘어놓고 내가 휘둘렀던 것들의 이름과 그 미미함에 대해서, 이 침대의 안락함에 대해서, 지금 느끼는 무력감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다 나는 왠지 친구의 침대에서 악몽을 꾸고 오줌을 싸버릴 것 같아서 자기 전에 오줌을 눠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문을 열어젖히며 부동산의 남자를 음흉하게 외면하고 파란 대문의 여자를 멋대로 공감하고 101호의 여자를 함부로 동정했던 나는 빙하 앞에 서 있었다. 화장실 창틀에서부터 휘몰아치는 우풍은 눈보라를 담고 있었고 변기는 하얀 얼음으로 깎여져 있었다. 화장실 타일은 빳빳하게 얼어붙어 있어서 나는 발끝을 주춤거렸다. 나는 높은 확률로 미끄러져 크레바스에 빠질 것이다. 변기 위에서 바지를 벗고 앉았다. 오줌은 나오지 않고 헛떨림만 이어졌다. 아마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잔뇨감과 고립감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빙벽이 허벅지 속까지 냉기를 집어넣어 피부를 뚫어대며 옭아메는 것을 어쩌지도 못한 채 손에 쥔 피켈 하나만 휘둘러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밤의 변기 위에서, 고작 이만한 크기의 변기 위에서 둔부부터 옥죄여 오는 냉기에 포박당한 채 고개를 숙이고 창백하게 뾰족한 성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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