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영수 May 12. 2024

[5]


 편의점에서 600원짜리 물을 사려다 라벨이 있는 800원짜리 물을 사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나는 이미 인터넷으로 위치를 확인한 부동산을 정해두고 그 앞을 지나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걸 두 번이나 반복한 뒤에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부동산에 들어서자 중개인으로 보이는 4명이 나를 쳐다보았다. 

 “원룸 전셋집을 찾고 있는데요.”

 원룸 전세라는 단어에 3명이 고개를 홱 돌렸다. 계속 날 응시하고 있던 남자 옆으로 자연스레 이동했다. 남자가 나에게 의자에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옆에 서 있었다. 몇 초가 지나자 그제야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듯 놀라는 척하며 그 남자는 턱짓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세요.’ 했다. 그 남자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검었고 부분부분 더 검은 상처 자국이 있었다. 짧게 자른 직모 머리와 옆으로 뻗쳐있는 구레나룻, 얼굴에 남아 있는 여드름에도 불구하고 어려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위아래로 좁으며 각 눈썹 방향으로 찢어지듯 올라간 눈매와 그 안에 더 작은 눈동자가 어떤 소설에서 사람 얼굴을 넙치에 빗대어 표현했던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얼마 정도 생각하세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 남자가 말했다.

“1억 2천만 원입니다.”

 내 대답에 그 남자는 퍽 흥미를 잃어 보였다.

 “요새 전세 없어요. 끝다리 월세 달리는 거 감수하셔야 돼.” 

 나는 월세가 부담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리고 사무실을 구경하는 척했다. 부동산 사무실은 작았지만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업무공간과 응접실 부분이 얇은 커튼을 통해 나누어져 있었고 이 지역을 크게 축척한 지도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붙어 있었다. 그 지도 안에서도 해를 받지 못하는 곳이 있었다.

 “대출 돼야 되죠? 입주 날짜는? 주차는? 반지하는 싫지? 또? 지금 다 말해요.”

 남자는 질문이 취조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남자의 질문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성실히 답하며 그 남자가 내 전셋집을 찾는 일에 흥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보다 어려 보이니까 제가 뭐 좀 알려 드릴게. 이 동네는요. 그 돈으로는 정말 어려워요. 그냥 거의 없다고 보면 돼. 아시죠, 손님도?”

 “그럼 아예 못 구하나요?”

 “제가 힘써봐야죠. 최대한. 제가 이 동네 부동산에서 탑쓰리 안에 들거든. 매물도 제일 많이 물고 있고요. 또 매물이 다 공유 되는 거라서, 아까 화면 보셨죠. 그 시스템으로 다 연락 와. 그래서 다른 부동산 가도 다 똑같애.”

 나는 정말 매물이 다른 부동산으로 가도 차이가 없는 것인지 경쟁 업체로 가지 말라는 것인지 남자의 의중을 알기 힘들었다. 하지만 남자가 반말을 섞는 말투로 나를 대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를 상대할 경우 위력적인 모습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나는 괜히 취조실에서 그 남자의 머리카락을 쥐고 벽에 갖다 박는 상상을 했다.

 “일단 요 앞에 하나 보러 가시죠.”

 남자는 선심 쓰듯 말했다. 나는 남자를 따라나섰다. 남자는 걸어가며 그 집의 주인과 통화를 했다. 남자는 집주인에게는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남자의 통화 목소리 톤이 바뀌는 게 가엽게 느껴졌다.

 “여기저기 통화할 일도 많고 정말 바쁘시겠어요.”

 남자가 통화를 끝내자 나는 침묵이 무겁게 느껴져 남자에게 말을 붙였다.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일의 고충을 늘어놓았다. 나를 조금 친근하게 대하는 것으로 느껴져 한편으론 기뻤지만 조금 귀찮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나에게 직장이 어디길래 이 지역에 집을 구하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잘 모른다고 했다. 

 “집을 먼저 구할게 아니고 직장을 구해야죠. 나중에 진짜 고생해요.”

 남자는 작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서울은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출퇴근 하다보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일이 생길 거라는 게 남자의 요지였다. 나는 남자의 이야기를 대체로 수긍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도 직장을 구하면 근처로 거처를 옮길까 생각해 봤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남자는 그러면 서울에 무슨 일로 올라왔냐고 물었다. 나는 또 머뭇거렸다. 내 계획을 공유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정말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이번에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는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대답이 궁금했다기보다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에게 물어봤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대답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체로 따분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성공한 학교 선배의 무용담을 듣는 신입생의 눈빛으로 경청하기로 했다. 이야기의 골자는 이랬다. 자신은 지금 이 지역 부동산 업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이지만 이 일이 만족스럽지 않아 곧 다른 사업을 할 것이며 예전엔 요식업에 적을 뒀다고 했다. 

 “진혁 씨, 정말 사회 쉽지 않아요. 믿을 사람이 없어. 배달기사들이 현금 받고 나한테 이야기 안 하고. 그때는 가게에서 배달기사를 고용해야 했었거든. 새벽에 청소 아줌마가 돈가스 빼가고. 진짜 미친다니까요.”

 나는 돈가스 가게를 했다고 말하는 것과 요식업에 적을 뒀다고 말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돈가스를 빼가는 아줌마를 CCTV로 보다 새벽에 혼자 분개하는 넙치가 상상이 되어 하마터면 웃음이 날 뻔했다.

 “진짜 보통 일이 아니었겠어요.”

 “네. 사람 피 말려요. 요식업 시작하지 마세요.”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는 않아서 땅만 보고 걸었다.     

남자는 지은 지 4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빌라 앞에서 멈춰 섰다. 빌라 입구에서 노인이 가래를 크게 모았다가 뱉어댔다. 남자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남자가 노인의 욕을 하는 것이 듣고 싶지 않아서 시선을 피했다.

 “외관은 별로 안 좋죠? 근데 이런 집이 오래되어 보여도 정붙이고 살기 좋아요. 전세 1억 2천. 진혁 씨 예산 안에도 들어오고. 일단 한번 들어가 보죠.”

 집 안에 사람은 없었지만 옷가지를 보아 할머니가 사셨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벽지 한 곳에 곰팡이와 바닥 쪽에 물이 올라온 흔적이 눈에 띄었다. 남자는 나보다도 먼저 벽지와 바닥을 짚으며 말했다.

 “집주인한테 물어보니까 위에 방수공사는 이미 다 해서 이제 물 샐 일 없다고 하고요, 밑에 물은 그 공사 전에 샜던 건데 할머니가 그냥 사셨던 거라네.”

 나는 괜히 수도꼭지를 열었다 닫았다. 남자는 집 주인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기 공사 다 된 거 맞죠? 네. 네. 창문도? 좋죠. 제가 이 분한테 말할게요. 요즘 젊은 사람들 나무 창문 안 좋아해요. 사장님 알죠? 장판도 하얀색으로 하고 또 유리도 초록색 그런거 하지말고. 맞죠?”

 남자는 주인과 통화하는 내내 나와 대화하는 듯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남자는 전화를 끊고 이 집으로 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집이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10점짜리 집은 없어요. 손님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겠는데 어차피 평생 사실 것도 아니고 안 그래요? 내 집도 아닌데 조건 어떻게 다 맞출 수가 있겠어요? 그냥 6점, 7점 좀 괜찮다 싶으시면 잡으셔야 되는 거예요. 요즘에 이런 매물 정말 없어. 또 전세로 구한다며. 요즘 집주인들이 다 월세 받으려고 그러지 누가 전세해요. 손님이 집주인이라도 안 그러겠어요?

 내가 집주인이면 나도 월세를 받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진혁 씨 지금 걸리는 게 뭔데요. 도배랑 장판은 다 해준다고 했고. 아니 그러면 한 달에 집값으로 얼마 정도까지 생각하세요. 얼마까지 낼 수 있으세요?” 

 나는 도배와 장판에 문제가 생긴 집에 사는 할머니를 모른 체 하는 집주인을 상상했다. 바닥에서부터 물이 올라와 검게 물결이 생겨난 나무 장판이 할머니의 검버섯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나는 작게 말했고 남자의 얼굴은 크게 구겨졌다. 나는 왜인지 자꾸만 그 남자의 돈가스 가게의 현금을 빼돌린 배달 기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남자의 취조 끝에 드러난 죄로 재판까지 오르고 최종 변론도 실패하여 결국 수감 되는 죄수. 나는 남자와 다시 부동산으로 호송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저는 여기서 그냥 걸어서 갈게요.”

 이 남자는 나를 이 동네라는 레고 블록에 끼워 넣으러 온 것이다.

 “제가 그럼 좀 더 노력해 볼게요. 내일 한번 더 오세요. 오전 열시에 오실 수 있어요?”

 남자는 옆구리에 낀 다이어리를 꺼내 무언가 빼곡히 적힌 칸들을 나에게 보여주듯 펼치고 내 응답을 기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다이어리에 뭔가를 적었다. 나는 미궁에 실시간으로 빠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고 나는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헛으로 하며 반대로 걸었다.

이전 04화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