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몇 년 전 시위가 열렸던 서울 광화문광장이 눈 안쪽에서부터 골목으로 튀어나왔다. 그때 트럭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대통령의 잘못을 열거하며 사람들의 호응을 갈망하던 사람들. 멈추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이동하던 군중. 거기에 한 여학생이 있었다. 지금 소스라치게 저 여자와 포개어지는 그 여학생. 당시 많은 트럭 발표자들 사이에서 군중의 눈길과 발길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1.5톤 파란 포터 위에서 감정을 폭발시켜 울음과 분노를 섞어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던 그 여학생 앞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때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군중들은 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그 학생의 말에 공감하며 함께 분노하고 박수로 동의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의 넘치는 감정이 나에게로 흐를 만큼 민감하거나 낮았던 것이다. 정의, 자유 따위의 관념적 한자어에도 가슴이 뜨거워졌던 그때 나에게 서울이란 일종의 강렬한 파토스를 담아내는 그릇이었고 광장 트럭 앞에서 여자의 울음 섞인 물음과 나의 대답이 합하여 생겨나는 어떤 달콤한 것을 그저 선 채로 핥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자와 경찰이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이 기차의 역방향 좌석에서 창문 밖을 보는 것처럼 멀어져가는 무언가의 모습을 안락하게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여자의 노인에 대한 분노는 무슨 이유로 나에게 넘어오지 않을까. 골목 끝에서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여, 왔나”
친구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도 손을 흔들었다.
“경찰이 왔더라.”
“언제? 뭐 때문에?”
“아까. 모르지.”
나는 여자와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게 친구 동네에 대한 욕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말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