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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영수 May 12. 2024

[4]

‘제가 지금 지방에 일이 있어서 내려와 있거든요. 집은 지금 아무도 없는데 근처 오시면 비밀번호 알려 드릴 테니 혼자 보실 수 있겠어요?’     

아침에 공고에 올라온 집의 현재 세입자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세입자가 직접 내놓은 공고를 보고 연락을 했었다. 알려 준 역 출구를 나와 주소로 향해 걸으며 이곳이 평지라 걷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동네는 남녀 할 거 없이 징집이라도 된 듯 조용했다.     

‘파란 대문 앞에 서면 연락주세요.’

허리 높이까지 오는 작은 파란 대문이 주위 오래된 주택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오전 아홉시에도 새벽같이 푸른빛의 이곳의 해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주인 집으로 보이는 대문 뒤 쪽으로 열 걸음 정도 걸어가면 보이는 파란 대문. 나는 세입자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곧이어 메시지로 비밀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자 나는 아무도 없는 남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하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신발장에 아직 남아 있는 신발의 크기를 보니 전 세입자는 여성이었겠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자 집안의 모든 공간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7평 남짓한 공간. 방문을 여는 행위가 어두운 공간에서 LED 랜턴을 켜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곳곳의 수도꼭지의 물을 틀어보고 전등을 켜보고 으레 하는 행동들을 의식처럼 마친 뒤 침대에 걸터앉았다. 동네보다 집 안은 더 조용했다. 집 안은 동네의 푸른 해가 비치지 않았다. 아쉽다고 생각했다. 창을 열어보기로 했다. 침대 맡의 커다란 창을 여니 나무가 보였다. 주인집 대문 쪽으로 난 창문은 열리지 않았고 신문지를 덕지덕지 붙여놓아 막혀있었다. 그 창 너머엔 해가 있었다. 신문지를 떼어낸다면 햇빛이 들겠지만 집과 창의 구조상 주인집 대문 너머서 해가 보일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살게 된다면 나는 이 창을 어떻게 할까. 굳이 신문을 구해 창문에 바르는 여자를 떠올려 봤다. 작은 발의 여자가 한낮에 귀가하여 집에 들어온다. 문을 열자마자 한눈에 들어오는 살림들에 안정감을 느끼며 침대에 몸을 누인다. 머리맡의 창가에서는 아직 해가 끓고 있는 중이고 주인집 대문을 넘어 창문을 녹일 듯이 비추는 빛줄기는 창문에 붙여놓은 신문지를 관통하고, 그럼에도 그 신문 헤드라인의 커다란 검은 글씨는 뚫어내지를 못해 여자의 머리맡에 음각으로 새겨지는 문구들은 문신처럼 여자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나는 신문지로 스테인드글라스를 꾸며놓은 작은 교회가 생각이 났다.     

‘집 잘 봤습니다.’

파란 대문을 밀고 나서며 세입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 동네의 주민이 산책을 나온 것처럼 동네를 걸어보기로 했다.

‘진혁이 집 좀 알아보고 있나?

나는 친구의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은 채 계속 걸었다. 대화가 이어진다면 거짓말을 하게 될 것 같았다. 허기가 졌지만 뭔가 먹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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