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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영수 May 08. 2024

[2]

  “진혁이 언제 올라오게? 그래. 언제든 올라 온나. 나도 처음 발령받아서 올라왔을 때 막막했거든. 동기 집에서 두 달 넘게 있으면서 집 구했다. 친구야 진짜 잘 알아봐야 된다. 니 회사 위치랑 이런 거 다 고려해가지고 또 집 보러 가면 꼭 등기부 다 떼보고. 알제? 전세사기 조심해야지.”     

 “고맙다. 한 며칠만 신세 좀 질게.”     

 나는 전세사기를 조심하는 정도에 따라 피해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굳이 친구의 말에 반박하고 싶진 않았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동안 친구의 집을 닻 삼아 타지의 경계심을 잠시 메어 두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친구 집 공동현관 앞에 짐을 내려두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친구를 기다리고있었다. 비밀번호도 미리 알려 주었지만 주인 없는 집에 먼저 들어가‘왔나’하는 것이 실례로 생각되어 그러지 않기로 하고 밖에 서 있었다. 그때 옆집에서 돌연 여자 울음소리가 들렸다. 계단 밑에서 눈이 부은 여자와 제복 입은 경찰이 보였다. 

 “이거를 어떻게 해요 제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가 보이지 않는 듯 여자는 터지는 울음을 먹어가며 경찰에게 말했다. 나는 강한 흥미를 느꼈다.

 “진짜 이웃을 잘 만나는 게 중요해요. 어쩔 수 없어요. 이건”

 경찰은 난감해하며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여자를 보며 말했다. 나는 지루하던 차에 눈앞에 일어나는 작은 소동이 반가웠다. 

 “그래도 이번 건 정말 너무 했어요. 할아버지가 비닐을 다 뜯고...”

 여자는 세 음절마다 울음을 삼키느라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갔다. 경찰과 여자가 나온 문안에서는 여전히 어떤 노인이 소리를 치고 있었다. 노인의 목소리는 몹시 컸지만 발음이 뭉개져서 어떤 내용을 외치는지 알아들을 순 없었다. 경찰은 사건으로 처리될 일은 아니라 판단했는지 여자를 빨리 위로하고 싶어 했고 여자는 그게 목적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여자는 경찰과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노인의 외침이 들리면 문 쪽으로 돌아서서 일일이 반응을 했다.

 “이제 그만하세요 진짜. 저 힘들어요. 제발요”

 여자는 더 큰소리로 울었고 경찰은 무안해했다. 나는 그때부터 경찰이 여자를 곤란하거나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여자는 울면서도 경찰에게 계속 물었다. 경찰은 구경꾼들을 피해 여자를 멀리 데리고 갔다. 여자와 경찰이 골목 끝으로 사라진 뒤에도 노인의 고성은 멈추지 않았다. 듣는 사람이 없는데 왜 소리를 지를까. 어떤 분노는 꼭 대상을 향해 표출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여자의 마지막 공허한 질문을 곱씹었다. 친구를 기다리며 딱히 할 일도 없었던 것이었다.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에요’

 여자는 노인이 본인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노인과 여자는 혈연관계는 아니어보였다. 왕래가 평소에 잦아 친밀도가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으니 여자가 노인에게 해준 것에 비해 노인에게서 돌아오는 것이 이 정도이면 안 된다는 방향으로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것보단 노인이고 아니고를 떠나 사람이 사람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근데 그 물음이 왜 노인이 아닌 제 3자인 경찰에게 향한 것일까. 중요한 것은 끝부분일 것이다. ‘아니에요?’에는 확신이기엔 모자라 타인에게 동의를 구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 아닌가. 눈물까지 흘리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타인에게 동의를 구하는 모습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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