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영수 May 08. 2024

[2]

 친구 집 공동현관 앞에 짐을 내려두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친구를 기다리고있었다. 비밀번호도 미리 알려 주었지만 주인 없는 집에 먼저 들어가‘왔나’하는 것이 실례로 생각되어 그러지 않기로 하고 밖에 서 있었다. 그때 옆집에서 돌연 여자 울음소리가 들렸다. 계단 밑에서 눈이 부은 여자와 제복 입은 경찰이 보였다. 

 “이거를 어떻게 해요 제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가 보이지 않는 듯 여자는 터지는 울음을 먹어가며 경찰에게 말했다. 나는 강한 흥미를 느꼈다.

 “진짜 이웃을 잘 만나는 게 중요해요. 어쩔 수 없어요. 이건”

 경찰은 난감해하며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여자를 보며 말했다. 나는 지루하던 차에 눈앞에 일어나는 작은 소동이 반가웠다. 

 “그래도 이번 건 정말 너무 했어요. 할아버지가 비닐을 다 뜯고...”

 여자는 세 음절마다 울음을 삼키느라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갔다. 경찰과 여자가 나온 문안에서는 여전히 어떤 노인이 소리를 치고 있었다. 노인의 목소리는 몹시 컸지만 발음이 뭉개져서 어떤 내용을 외치는지 알아들을 순 없었다. 경찰은 사건으로 처리될 일은 아니라 판단했는지 여자를 빨리 위로하고 싶어 했고 여자는 그게 목적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여자는 경찰과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노인의 외침이 들리면 문 쪽으로 돌아서서 일일이 반응을 했다.

 “이제 그만하세요 진짜. 저 힘들어요. 제발요”

 여자는 더 큰소리로 울었고 경찰은 무안해했다. 나는 그때부터 경찰이 여자를 곤란하거나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여자는 울면서도 경찰에게 계속 물었다. 경찰은 구경꾼들을 피해 여자를 멀리 데리고 갔다. 여자와 경찰이 골목 끝으로 사라진 뒤에도 노인의 고성은 멈추지 않았다. 듣는 사람이 없는데 왜 소리를 지를까. 어떤 분노는 꼭 대상을 향해 표출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여자의 마지막 공허한 질문을 곱씹었다. 친구를 기다리며 딱히 할 일도 없었던 것이었다.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에요’

 여자는 노인이 본인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노인과 여자는 혈연관계는 아니어보였다. 왕래가 평소에 잦아 친밀도가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으니 여자가 노인에게 해준 것에 비해 노인에게서 돌아오는 것이 이 정도이면 안 된다는 방향으로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것보단 노인이고 아니고를 떠나 사람이 사람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근데 그 물음이 왜 노인이 아닌 제 3자인 경찰에게 향한 것일까. 중요한 것은 끝부분일 것이다. ‘아니에요?’에는 확신이기엔 모자라 타인에게 동의를 구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 아닌가. 눈물까지 흘리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타인에게 동의를 구하는 모습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갑자기 몇 년 전 시위가 열렸던 서울 광화문광장이 눈 안쪽에서부터 골목으로 튀어나왔다. 그때 트럭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대통령의 잘못을 열거하며 사람들의 호응을 갈망하던 사람들. 멈추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이동하던 군중. 거기에 한 여학생이 있었다. 지금 소스라치게 저 여자와 포개어지는 그 여학생. 당시 많은 트럭 발표자들 사이에서 군중의 눈길과 발길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1.5톤 파란 포터 위에서 감정을 폭발시켜 울음과 분노를 섞어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던 그 여학생 앞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때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군중들은 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그 학생의 말에 공감하며 함께 분노하고 박수로 동의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의 넘치는 감정이 나에게로 흐를 만큼 민감하거나 낮았던 것이다. 정의, 자유 따위의 관념적 한자어에도 가슴이 뜨거워졌던 그때 나에게 서울이란 일종의 강렬한 파토스를 담아내는 그릇이었고 광장 트럭 앞에서 여자의 울음 섞인 물음과 나의 대답이 합하여 생겨나는 어떤 달콤한 것을 그저 선 채로 핥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자와 경찰이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이 기차의 역방향 좌석에서 창문 밖을 보는 것처럼 멀어져가는 무언가의 모습을 안락하게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여자의 노인에 대한 분노는 무슨 이유로 나에게 넘어오지 않을까. 골목 끝에서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여, 왔나”

친구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도 손을 흔들었다. 

 “경찰이 왔더라.”

 “언제? 뭐 때문에?”

 “아까. 모르지.”

 나는 여자와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게 친구 동네에 대한 욕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 01화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