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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an 30. 2024

개발자의 카메라

Ep3. 나를 위한 사랑스러운 마음

2024년 1월 26일.

나를 위한 남편이 준비한 여행, 겨울의 강릉 바다에서.


가끔 알 수 없는 우울한 감정이 내 평화로운 일상을 뒤흔드는 시기가 온다. 물론 일상을 깨트릴 만큼 요동치는 우울함은 아니지만, 마음 한 구석이 굉장히 무거운 바위로 누르고 있는 것 마냥 답답하기도 하고 억지로 텐션을 올리려고 해 봐도 텐션이 뚝- 떨어진다.


이런 시기가 보통 1년에 한 번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데, 이번엔 1월 중순에 그런 시기가 왔다. 정말 평화로운 일상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시기가 오면 나조차도 너무 당황스럽다. 우울한 감정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유를 늘어놓고 보면, 앞 뒤가 맞지 않는 내용들이라 이런 시기에는 누구한테도 말을 하기가 어렵다. 나조차도 내가 이해가 되지 않겠는데,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겠는가.


그런데 남편은 다르다. 나의 이런 시기를 몇 번째 겪어본 남편은 앞 뒤가 없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바다 보러 갈까?'라고 말을 한다. 이럴 때마다 계획형 인간인 남편은 갑자기 내일이 없는 사람이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강릉 바다를 잠깐 보기 위해 왕복 5시간 운전도 상관없다고 말해주는 사람이고, 내일 자신의 일정보다는 당장의 내 기분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강릉을 다녀왔다. 갑자기 떠났기에 1박 2일로 짧게 다녀온 여행이었지만, 겨울 바다의 파도 소리는 내 답답하게 나를 짓누르던 바위를 치워준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카메라로 찍었던 수많은 사진을 정리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잘 찍었다고 생각했던 사진들을 모두 제치고 이 사진을 보는데 왜인지 모르게 울컥했다.


계속되던 추운 나날들 중에 우리 가족을 맞이하는 듯 딱 좋았던 1월의 강릉 날씨.


1박을 보내고 아침에 일찍이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앞을 남편과 반려견 몽이, 쿵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처음 바닷가에 온 아이들이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밀려오는 파도에 놀라 도망치는 모습 덕분에 아침부터 남편과 한참을 웃으며 산책을 했다. 아침이라 한적했던 바닷가에서 거닐며 듣는 파도 소리가 참 평화로웠다.


산책을 하다가 중간에 잠시 앉아서 쉬는 동안, 나는 곧 떠날 바다가 아쉬워서 사진을 찍다 남편의 뒷모습과 바다를 사진으로 남겼다. 찍는 순간에도 남편에게 참 고마운 감정이 들었는데,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니 고마운 감정이 너무 커서 울컥했던 것 같다.


남편은 계속된 약속으로 12월부터 거의 주말 내내 쉬지 못했기에 이번주에는 꼭 쉬겠다며 다짐을 했었다. (남편은 집돌이라 집에서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내야 컨디션이 회복이 되는 편이다.) 그런데 나를 위해 멀리 강릉까지 오겠다며 모든 준비를 혼자 했다. 호텔 예약도 물론이고 다음날 카페는 어디를 갈지 모든 걸 혼자 고민했다.


그 고민이 오롯이 나를 위함이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하며 나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며 중간중간 짜증이 섞인 톤으로 말을 툭툭 내뱉었다. 남편은 내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 평소보다 더 내 눈치를 보며 내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느껴졌는데도 부정적인 말을 하는 내가 나 스스로도 너무 못났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를 위한 여행이기도 했지만, 나를 위해 쉬지도 못하고 운전까지 열심히 해서 온 사람에게 너무 무례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가장 사랑해 주고 위해주는 남편이기에 더 배려했어야 하는데, 솔직한 감정이라는 포장을 씌워서 배려 없는 행동을 한 게 후회가 된다.


이 사진을 보며 다시 한번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나와 더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배려할 것. 솔직함이라는 포장을 씌워서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출하지 말 것.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할 것.


- 나를 위하는 남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했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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