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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Nov 23. 2024

울러 도망가다

제주 수국


DSLR 카메라와 짐 가방 하나를 들고 비행기를 탔다. 목적지는 제주도. 나는 울기 위해 도망치는 중이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나를 울지 못 하게 했다.

"너 울면 되게 못 생겼어." 혹은 “그게 울 일이야?"라는 말로.


스무 살, 가장 친하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도 엄마는 울지 못 하게 했다. 언젠가는 그렇게들 갈 텐데 그때마다 울 거냐고.





일하는 데 의미가 꼭 필요했다. 남들처럼 예쁘게 꾸미고 놀러 다니고 싶은 20대에 골방에 쳐 박혀 20시간씩 번역만 해 대는데, 이렇게 가족만을 위해서만 살 수는 없다. 내 삶에 의미 있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래! 심장병이 있어 매년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나의 작은 '꼬마'의 약값을 버는 거다! 이 녀석 그나마 좋은 사료 먹어야 하니까 열심히 일하자! 그렇게 시간을 버텨냈다.


그 시간이 끝나가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덧 16살이 된 작고 노쇠한 강아지는 기침을 시작하면 등 두드려 달라고 옆으로 온다. 하루라도 더 붙들고 싶은 마음에 등을 두드려 주고 약을 먹이고는 꼭 껴안고 잠자리에 든다. 숨 쉴 때마다 내 코에서 나오는 바람이 싫다고 곧 도망가 버린다. 서운하게...


그런데 의미가 사라졌다. 억지로 붙들었던 그 세월을 녀석이 놓아버렸다. 나는 갈피를 잃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탔다. 일은 모두 끝내 놓았다. 번역사 사장님께 며칠만 여행을 다녀온다고 얘기해 뒀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렌터카를 받아 타자마자 그냥 눈물이 났다. 목놓아 엉엉 울었다. 한바탕 울고는 차를 몰아 바다로 향하는 길. 너무나도 예쁜 수국이 길가에 그득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돌무덤. 그곳에 차를 세우고 돌무덤에 앉아 바다를 보고 또 울었다. 파도가 쳐서 울고, 바람이 따스해서 울었다. 수국이 예뻐서, 돌무덤이 너무 높이 쌓여 있어서 울었다.




2010년 7월 12일 제주 수국


2010년 7월 12일 제주 돌무덤



2박 3일 동안 묵은 숙소에서 나오던 중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부르시더니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자몽을 주신다. "이거 자몽 아니고 oo이야."라고 하셨는데, 그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뒤에 붙이신 말씀에 괜히 죄송했다.


"젊은 사람이, 여자가, 혼자 와서는 딱 봐도 우는 얼굴로 있으니 좀 걱정했어. 뭔 사달을 내려고 그러나..."


그때부터인 것 같다. 여행은 내게 울러 도망가는 일이 되어 버렸다. 집에서 멀어져, 엄마한테서 떨어져서 홀로 울 수 있는 시간. 그게 여행이었다.







삶의 갈피를 잃은 나는 잠에 빠졌다. 아침 8시에는 정확하게 일어나 골방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잠에서 깨어나질 못 했다.


무기력증이라고 했다. 우울증이라고도 했다. “요즘 약 잘 나와. 처방해 줄까? “는 사촌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 “ 정신과 의사인 사촌은 임상병리학자를 소개해 줬고, 나는 그곳 상담실에서 매번 울었다. "그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말을 잇지

못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탈출은 이제는 '엄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남자로 인해 다시 묶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남자도, 나도 엄마에게서 독립을 선언했고, 우리는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의 여행을. 이제 우리는 그 안에서 울지 않는다.  



23년 7월 제주 with 고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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