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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Nov 20. 2024

엄마와 용서

루덴시아

"오지 말았어야지. 어떻게든 그냥 거기 있었어야지. 그럼 다들 어떻게든 살아갔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원망은 나에게로 쏟아졌다. 


내가 다시 돌아온 이유 중 가장 큰 건 엄마였다.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국으로 전화를 했다.

도무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부도가 났다. 

금액이 너무 컸다. 

유학 가기 일주일 전이었다. 


이미 비행기표와 기숙사, 수업료까지 모두 지불한 상태. 무조건 그냥 가는 거다 등 떠밀려 도망치듯 갔다. 

그랬으면 잘 살도록 좀 내버려 두지. 매일을 전화로 하소연을 게 누군데...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할머니들을 보고는 엄마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부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부잣집 딸이었다는 우리 엄마는 철마다 양장점에서 수입 원단으로 옷을 해 입었다고 했다. 사업하는 아빠를 만나 떵떵거리고도 살아봤고, 발 붙일 곳 없이 거리로 나앉아도 봤다. 이제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버거운 여기저기 부러져 고통스러운 할머니로, 살갑던 딸마저 등 돌려 버린 외로운 노인으로 살아갈 뿐이다. 


"네 탓이야."

맞다, 내 탓이다. 내가 눈 감았더라면, 전화번호를 바꿨더라면, 모른 척했었더라면 우리 엄마도 자기 인생 훨훨 잘 살아가며 지금쯤 다른 멋쟁이 할머니들과 함께 이런 멋진 곳에 와 드레스 입고 하하 호호 웃으며 사진 찍고 놀고 있을 텐데...



합성 아닙니다!  지는 해와 나 @루덴시아 




"내가 그때 안 왔으면 우린 못 만났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 남편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야, 우린 운명이야. 어떻게든 만났을 거야."





형형색색의 드레스 부대, 루덴시아에 가면 드레스를 대여대 준다. 



나는 자신을 용서했다. 이상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아직도 내가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때, 공부를 마치지 못한 것, 끝까지 버티지 못했던 것, 모든 원망을 감내하며 나 자신을 미워하며 살아온 자신을. 내가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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