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덴시아
"오지 말았어야지. 어떻게든 그냥 거기 있었어야지. 그럼 다들 어떻게든 살아갔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원망은 나에게로 쏟아졌다.
내가 다시 돌아온 이유 중 가장 큰 건 엄마였다.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국으로 전화를 했다.
도무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부도가 났다.
금액이 너무 컸다.
유학 가기 일주일 전이었다.
이미 비행기표와 기숙사, 수업료까지 모두 지불한 상태. 무조건 그냥 가는 거다 등 떠밀려 도망치듯 갔다.
그랬으면 잘 살도록 좀 내버려 두지. 매일을 전화로 하소연을 한 게 누군데...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할머니들을 보고는 엄마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부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부잣집 딸이었다는 우리 엄마는 철마다 양장점에서 수입 원단으로 옷을 해 입었다고 했다. 사업하는 아빠를 만나 떵떵거리고도 살아봤고, 발 붙일 곳 없이 거리로 나앉아도 봤다. 이제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버거운 여기저기 부러져 고통스러운 할머니로, 살갑던 딸마저 등 돌려 버린 외로운 노인으로 살아갈 뿐이다.
"네 탓이야."
맞다, 내 탓이다. 내가 눈 감았더라면, 전화번호를 바꿨더라면, 모른 척했었더라면 우리 엄마도 자기 인생 훨훨 잘 살아가며 지금쯤 다른 멋쟁이 할머니들과 함께 이런 멋진 곳에 와 드레스 입고 하하 호호 웃으며 사진 찍고 놀고 있을 텐데...
"내가 그때 안 왔으면 우린 못 만났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 남편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야, 우린 운명이야. 어떻게든 만났을 거야."
나는 나 자신을 용서했다. 더 이상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아직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때, 공부를 마치지 못한 것, 끝까지 버티지 못했던 것, 그 모든 원망을 감내하며 나 자신을 미워하며 살아온 나 자신을. 내가 용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