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5일
제주의 밤은 육지의 낮보다 아름답다. 고요히 치는 파도 소리, 쏟아질 듯 많은 별, 세찬 바람.
저녁 식사 후엔 꼭 산책을 한다. 평일 대부분의 저녁 식사를 단백질 셰이크로 때우다가 주말이나 여행 가 고기나 회가 위에 들어가면 위가 요동치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며 살살 달래주어야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 그래서 밤의 문화가 없는 곳에 여행을 가면 정처 없이 동네를 걷곤 했다.
다행히 제주에도 많은 밤문화가 생겼다. 세연교에 불을 켰고, 특별한 날 한정의 프리마켓도 밤까지 불을 밝혀 줬다. 그리고 이곳, <루나폴>이 생겼다.
몇 년 전 갔을 땐, <포레스트 환타지아>라는 이름이었는데, 이름이 바뀌었다. 입구부터 모두 다 똑같은데, "일단 대기"라는 게 생겼다.
대기실에는 <루나폴>의 세계관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흥미롭다. 사람들이 달을 보고 소원을 빌 때마다 달은 점점 무거워졌다. 어느 날, 소원의 무게를 견디지 못 한 달이 제주도에 떨어졌다! 걷다 보면, 언젠가 내가 간절하게 빌었던 소원과 마주하게 될 거라고도 했다.
드디어 시간이 됐다. 사람들이 모이고 문이 열린다. 하얀색 로브를 입고 얼굴에 가면을 쓴 루나가 등불을 들고 우릴 안내해 준다. 짧은 영상을 보고 우리는 숲으로 들어간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름, 그리고 여기저기 놓인 조그맣고 동그란 달들. 그리고 예전에 사슴과 코끼리 등으로 장식해 뒀던 들판에 거대한 달이 뚝 떨어져 있다.
"나는 예전이 더 좋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대기실에서 본 테마대로 숲을 구성해 뒀다. 아, 진짜 별 거 아니네. 살짝 입장료 아까운데? 할 때쯤 곶자왈로 들어섰다.
정말 누군가가 나를 위해 빌어준 소원들이 떨어진 숲이었다. 아련한 음악과 함께, 바닥에 소원들이 툭툭 던져져 불을 밝히고 있다. 처음엔 울퉁불퉁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곶자왈을 밤에 걷는 게 겁이 나고 부담스럽지만, 곧 익숙해진다.
"넘어지지 말고 조심조심"
"어두운 길에서는 주변을 잘 살피고"
"천천히 가도 돼. 조급할 필요 없어"까지 왔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걸었다. "넘어져도 아프지 않길. 씩씩하게 일어나길"
그러다 만났다...
"언젠가 내가 없어도 잘 지낼 수 있길."
모든 사고가 무너졌다. 눈물이 울컥한다. 남의 업장 와서 울면 안 된다, 민폐야.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엄마의 방에 서 있었다.
"나 죽고 나면 너 혼자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잠이 안 온다."
나의 이 어려움과 고단함을 함께 해 줄 사람을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던 나에게 엄마는 어느 날부턴가 결혼을 강요했다. 누구든 만나라, 일만 하지 마라, 집만 신경 쓰지 마라...
씨알도 안 먹히자 나온 "나 죽고 나면".
결국은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마침 나타난 오랜 친구에게 결혼하자! 해 버렸다.
결혼 후, 싸울 때마다 엄마는 가슴을 치셨다.
"내가 하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다행히 생각은 거기서 멈췄고, 우리는 긴 곶자왈을 빠져나왔다. 다시 만난 큰 달.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는다. 자식들과 여행 오신 한 어머님은 달 앞에서 각종 우스운 포즈를 잡으셔 가족들을 깔깔 웃게 만드신다. 우리 엄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재미있었는데 재미가 없었다. 즐겁게 들어갔는데 차분해졌다. 마음이 이리저리 흐르고 요동친다. 다행히 옆에서 오랜 나의 친구가 손을 꼭 잡아준다. 고마워, 친구야. 나도, 엄마도.
<루나폴> 안 곶자왈 전반에 흐르는 음악이 아련하고 추억을 불러일으켜서 동영상으로 녹음 해 왔다. 중반쯤, 소원 비는 목소리도 들리는 데, 많은 공감이 가는 소원이라 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