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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은 고통스럽고, 주말은 지루하다면?

by 밍작가


곤궁이 민중의 계속적인 재앙이듯이, 무료함은 상류 사회의 재앙이다. 서민의 삶에서 곤궁이 일주일의 6일로 대변되듯이, 무료함은 일요일로 대변된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주말만을 바라보면서 일주일을 버텨내지만, 막상 주말이 오면 지루합니다. 그렇게 바랬던 주말이지만 무료함이 몰려오면서 주중의 기대감이 무색해지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 평일이 되면 다시 전쟁터 같은 직장으로 돌아가죠. 다시 또 주말만을 기다립니다. 인생은 권태와 고통을 오가는 시계 추라고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했지만, 이는 거창한 게 아닙니다. 우리의 평일과 주말만 봐도 고통의 5일과 권태의 2일을 오가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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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울 때는 권태롭고 싶고, 너무 권태로우면 약간의 고통을 찾게 되는 이 끊임없는 시계추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통과 권태가 반복적으로 우리를 괴롭게 하니까요. 조금 더 민감하게 생각하면 평일에는 일 때문에 내일 당장 퇴사하고 싶기도 하고, 주말에는 무료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1%도 안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민중(우리)들은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뭐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직업을 정해버리곤 하니까요. 내가 고통스럽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저 멀리 있지만, 이미 내 몸은 이 일에 파묻혀 있죠. 이미 파묻히고 벌려둔 것들이 많아서 당장 빠져나가기도 어렵고요. (아니 사실 빠져나갈 용기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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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사람들은 과연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음악이 너무 좋아서 노래를 하지만 불규칙적인 수입으로 인해 생존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에겐 고통이 없을까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너무 좋아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가르치는 것 외에 수많은 행정업무나 학부모 민원에 파묻혀도 고통이 없을까요? 돈이 너무 좋아서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지만 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마음은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도 고통은 피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평일은 크고 작은 고통과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말마다 무료하지 않은 시간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주말마다 여행을 간다고 무료하지 않을까요? 주변 맛집에 줄 서서 기다려서 밥을 먹고, 주변 명소에서 사진을 찍는 주말, 그리고 장소만 바뀌고 반복되는 패턴은 '사서 무료함'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푹 쉬어보고자 하지만, 쉬는 게 아니라 자극적인 후킹으로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들의 조회수만 올려주며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공허해지는 감정이 생기곤 합니다. 집 밖으로 나가도 무료하고, 집 안에서도 무료합니다. 결국 공허해지기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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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과 주말의 관계는 가난과 부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가난으로 고통스러워하지만 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죠. 그냥 고통을 바라보고 고통에 아파하며 신세를 한탄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가난을 극복했다고 한들, 먹고살 만해진 '부'는 인생을 지루하게 만듭니다. 더 이상 그때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에 내 몸은 편한 것, 쾌락적인 것을 찾게 되고, 이런 것들을 찾다 보면 또 돈이 없어서 고통스러워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더 큰 부를 위해 먹고살 만하지만 또 고통스럽게 일을 하기도 합니다. 마치 주말이 끝나면 평일이 오듯, '부' 다음에는 상대적 '가난'이 따라오곤 하죠. 아무리 부자여도 나보다 더 부자인 누군가에 비해서는 가난하니까요.


결국 우리는 고통과 권태를 오가며 살 것입니다. 이 반복되는 시계추 운동 속에서 우리는 덜 힘들게 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시계추 운동의 진폭을 줄여야 합니다. 시계추 운동이 극단적이면 극단적일수록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니까요.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리면 무게중심이 맞지 않으니까요. 시계 추가 고장 나서 360도 돌아버릴지도 모르고, 걷잡을 수 없는 인생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내 안의 고통과 권태의 차이를 줄여야 합니다. 고통 다음엔 권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권태 이후에는 고통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를 알면 조금은 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게 일을 하지만 권태가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적당히 고통스러운 일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권태롭게 쉬지만 곧 고통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조금의 여유는 가져야 하고요. 가난하게 살지만 언젠가 노력해서 부가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가난한 구석을 간직해야 합니다. 부자로 살지만 가난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조금의 여유를 남겨둬야 하고요.


주중에 고통스럽게 일하지만, 주말에 찾아올 권태를 대비해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적당한 일을 주말에도 이어 나가야 합니다. 주말에 지루하게 쉬고 있어도, 주중에 찾아올 고통에 대비해서 주중에도 나에게 줄 수 있는 휴식을 마련해 둘 필요도 있습니다. 주중에 덜 고통스럽고, 주말에 덜 지루하기 위해서. 평일에는 주로 일하고 적당히 쉬고, 주말에는 주로 쉬고 적당히 일하는 것이 고통과 권태의 차이를 줄이는 길입니다.


주말에 적당히 일하라는 말은 회사 일을 집에까지 가져오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말에만 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주말이야말로 나의 미래가 권태롭지 않기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죠. 이 권태로움은 누적의 효과가 있어서 매주 권태롭게 지내다 보면 생산성은 음의 복리로 쌓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 노력은 양의 복리로 쌓여서 꾸준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기 마련이죠.


이 사회는 꽤나 극단적입니다. 주중엔 일만 하고, 주말엔 쉬기를 원합니다. 평일엔 고통스럽고 주말엔 무료하길 원합니다. 이 극단 속에서 시계 추의 진폭은 커집니다. 그만큼 큰 진폭으로 우리의 인생을 때려댑니다. 중심을 잡기 쉽지 않습니다. 고통과 권태가 반복되는 인생에서 중심을 잃어가기 쉽습니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쉬는 게 당연하지만, 비율을 조금만 조정해 보는 건 어떨까요? 7:3 혹은 8:2 정도로 말이죠. 10:0보다는 무조건 좋을 것입니다. 내 고통과 지루함의 진폭은 작아지고 더 중심 잡힌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일도 더 잘 되고, 미래도 더 밝아질 것입니다. 인생은 하루 이틀 살고 끝내는 게 아니니까요. 결국 인생은 장기전이기에 누가 더 오래 시계 추를 잘 흔들면서 사는지에 따라 정해질 테니까요. 과도하게 흔들리는 시계 추는 결국 고장 나기 쉬운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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