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는 법

by 밍작가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은 우리가 얻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고난의 정체였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군가는 사람 때문에 힘들고, 또 누군가는 사람 덕분에 행복합니다. 누군가는 돈이 있어 고통스럽고, 또 누군가는 돈이 없어도 행복합니다. 이렇게 같은 대상을 두고도 고통과 고난은 사람에게 다른 형태와 크기로 찾아옵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고통을 해결하고자 그 원인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고통은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요. 그렇기에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라는 애매하면서 그럴싸한 말이 고통에 대한 꽤나 괜찮은 표현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시간과 상황,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고통은 한순간에 우리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장애물과 성장하고자 몸부림칠 때 만나는 외적인 고난을 이겨내지 못했을 때, 고통이라는 감정은 바이러스처럼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 잡게 됩니다. 고난이라는 외부적인 어려움을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잔재들이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감정에 새겨지는 것이죠.

image.png?type=w1


고난은 일시적이지만, 고통은 장기적입니다. 고난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이고 정형화되어있지만, 고통은 주관적이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직장에서 매일 겪게 되는 직장 상사와 동료 직원들의 갈등은 고난입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불안과 분노로 출근 때마다 두려운 것은 고통입니다. 대부분의 수험생이 목표하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 매일 공부하는 것은 고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고난은 수험생일 때만 겪게 되죠. 시험이 끝나면 그 고난은 사라집니다. 물론 목표대학에 가지 못했을 때의 패배감을 어떻게 소화하는지에 따라서 고통으로 남을 수 있고요.

image.png?type=w1


청소년기에는 정체성을 찾아가며 학업 스트레스와 친구관계라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20대에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으며, 30대에는 생존과 관계 형성에서 생기는 고난을 느낍니다. 그리고 40대에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으며, 50대에는 상실과 노후에 대한 불안이라는 고난이 자연스레 찾아옵니다. 이렇게 자신은 전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정형화된 이 사회에서 고난은 세대별로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평범하게 살고 있다면 결국 이 정형화된 고난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헤쳐나가고 있는 순간에는 고난이 고난인지 모릅니다.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고난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또래들이 다들 이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나 또한 평범하고 당연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힘들지만 고통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당연하게 받아들이죠.

32061_43642_5130.jpg


숲 속에서는 숲이 얼마나 큰지 모르듯, 고난 속에서는 그 고난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 고난이 더 이상 고난이 아닌 시기에 되돌아보면 그 순간은 고난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이 고난이 보람으로 기억되기도 하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고난으로 기억되고 고통으로 남게 됩니다. 누구나 겪는 고난이 특정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고난은 고통으로 남게 됩니다. 그 당시에 얻어야 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결과와 당시 최선을 다해 살지 못했다는 낭비의 감정은 고난은 짙게 새깁니다. 그리고 이 기억과 현실의 불만족에 의한 후회가 결합되면 고통이라는 글씨로 마음속에 진하게 새겨지는 것이죠.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vTEAV%2FbtrwZZWgBOp%2FP0W5Zn5W9lAxdiDeLKks9K%2Fimg.jpg

반면, 최선을 다했다면 고난은 보람이 됩니다. 하지만 이 보람은 행복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이 보람은 새로운 고난으로 이어지죠. 수험생활이라는 고난을 잘 이겨낸 누군가는 더 좋은 대학을 갑니다. 더 좋은 대학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경쟁과 노력을 요합니다. 새로운 고난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고난을 또 넘어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최선을 다해서 고난을 이겨내 본 경험이 있기에,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겼고 고난에 대하는 자신만의 '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다음 고난에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고난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이어나간다면 결국 과거는 보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고난은 끝나지 않지만, 우리에게 찾아올 고난이 두렵지 않은 마음이 생깁니다. 고난이 고통스럽지 않고, 당연히 넘어야 할 인생의 과정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는 성장합니다.

H5v46g7DEL2K1YWp4xwq2nbkdrI.png

고난을 잘 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실패의 잔재가 새겨지고 장기화되면 불안, 우울, 공포 등의 감정이 생깁니다. 이렇게 인생의 일부분이 고통스럽기 시작했다가, 방치하다 보면 인생 전체가 고통스러워지곤 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은 자기에게 필요한 힘의 부족을 깨닫는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고통의 저 밑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내 마음대로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라는 무력함이 있습니다. 고통이 오기 전, 고난의 단계에서 최선을 다해 고난을 이겨냈어야 하는데, 이겨내지 못한 경험이 결국 고통을 만들어 낸 것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고통은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고통으로 마음속에 각인됩니다. 즉 고통스러운 인생은 자신의 의지대로 고난을 넘어서지 못하는 인생인 것입니다.


살다 보면, 원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고난이 찾아오곤 합니다. 오늘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고난이 내일 찾아오기도 하죠. 이런 삶을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학습적으로 고난이 찾아올 것을 예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험도 들고, 건강검진도 하고, 결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 찾아올 고난을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생각한 대로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난에 무너집니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맷집이라는 게 또 생겨서 고난과 함께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위에 종종 있는 항상 표정이 어두운 사람들,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운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죠. 삶이 힘들어 보이지만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맷집이 강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207686115-%ED%9D%91%EB%B0%B1-%ED%86%A4%EC%9C%BC%EB%A1%9C-%EC%96%BC%EA%B5%B4%EC%97%90-%EA%B7%B8%EB%A6%BC%EC%9E%90%EA%B0%80-%EB%93%9C%EB%A6%AC%EC%9A%B4-%EC%8A%AC%ED%94%88-%EC%97%AC%EC%9E%90.jpg


100%는 아니겠지만 쇼펜하우어는 어느 정도 고난과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우리에게 의존하는 것은 절대로 고려하지 않는 것을 우리 지혜의 핵심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든 고통, 고뇌, 불안에서 확실히 자유로워질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확실한 한 가지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을 이겨낼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가혹하더라도 이는 절대적으로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난을 이겨낼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 힘을 100% 발휘하지는 못합니다. 우리에게 의존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0대에는 부모님의 눈치가 나에게 의존한다고 생각하고, 20대에는 성인으로서의 행동양식이 나에게 의존한다고 생각하며, 30대에는 남편, 아내로서의 행동양식, 40대에는 부모나 직장의 중견간부라는 타이틀이 우리에게 의존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는 아무것도 아닌 이런 겉치레와 같은 것들이 각자의 고난을 넘어서지 못하게 합니다. 눈치만 보게 만드는 것이죠.

6284ba6603f317f1200617_ldw_01.jpg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같은 방식으로 정해진 고난을 넘으라고 이야기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비슷하기에, 우리에게 의존하는 것들도 대동소이합니다. 결국 이 사회는 고난을 넘는 방식도 정형화되어 버렸습니다. 타인이 그 방식으로 고난을 넘는다고 해서 나도 그 방법을 따라서 합니다. 학업에 대한 고난을 넘기 위해 어려서부터 남들이 하는 조기교육을 따라 하고, 학교에 다닐 때는 1등 친구가 다니는 학원과 문제집을 따라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배우자, 재테크를 따라 하곤 하죠. 하지만 그것은 타인의 100% 노력이지 나에게는 100% 노력이 아닙니다. 나의 성격과 기질을 고려한 더 좋은 방법이 있을 테지만, 무턱대고 따라 하다 보니 같은 결과가 생길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결과가 생길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 다른 결과가 실패라 여겨지고, 이 실패의 감정이 누적되어 결국 고통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똑같이 사는 인생 같지만, 그 누구의 인생도 아니고 그 누구의 고난도 아닙니다. 나만의 인생이고, 나만의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을 다른 사람들의 방식으로 넘는다는 생각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넘어야 합니다. 물론 나만의 방식으로 넘다가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실패는 따라 하다가만 얻는 실패와는 다릅니다. 나만의 방법을 통해 몰입을 했으며, 이 몰입을 통해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온전히 나만의 방식으로 했기에 내 방식의 장점과 단점을 느끼게 됩니다. 다음번 고난을 넘을 때는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살려서 고난을 뛰어넘어 고통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7021_11891_917.jpg


실패해도 됩니다. 하지만 실패할 거면 온전히 나만의 방식으로 실패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숙제를 할 때도, 친구들 숙제를 베껴서 틀릴 바에야, 나 혼자 낑낑대면서 숙제를 하고 틀리는 게 머릿속에 남는 것이 있는 것처럼. 고난을 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연연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다음 고난에 대해서 성장한 나만의 방식으로 초연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이게 바로 고난을 이겨내고 고통의 절대량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 인생을 사는 한, 고난은 계속 우리를 찾아올 테고,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누구에게 물어봐가며 넘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keyword
이전 07화어차피 사라질 것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