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롭고 낯선 상태로 넘어가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래 우리에게 고유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원래적 상태에 비하면 우리 인생은 하나의 짧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과 행복론>
안타깝지만, 결국 모두 사라집니다. 저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집, 자동차 그리고 배우자, 자녀 그리고 부모님 등.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언젠가 사라집니다. 아무리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써봐도 소용없습니다. 결국 사라지니까요. 사라지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이 세상을 이루는 많은 것들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와 물질들은 결국 사라지고 마는 것이죠. 세상은 결국 '원래대로' 돌아가는 성질이 있고, 우리는 모두 '원래' 존재하지 않았었으니까요.
'인생무상'이라고 흔히 알고 있는 불교의 '무상'이라는 개념도 비슷한 표현입니다. 모든 것은 한결같을 수 없고 결국 변하며, 어차피 부질없다는 과도한 허무주의에 빠질 수도 있는 위험한 표현이기도 합니다만, 결국 사라질 것이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옛 성인들은 어차피 사라질 것에 과도한 욕심을 가지며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집착합니다. 사랑에 집착하고, 사람에 집착하고, 물질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사람, 물질을 갖게 되면 더 강한 사랑과 더 멋진 사람과 더 좋은 물질에 집착합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에 우리는 집착하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인생을 살아가는 고통의 디폴트 값으로 안고 살아가죠. 무상하게 살지 못해서 고통스럽고 무한한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어차피 사라질 것이라고 하니 인생이 허무하긴 합니다. 언젠가 죽을 나를 위해, 언젠가 사라질 내 소유물을 위해, 언젠가 죽을 내 가족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일반적인 상식과는 이해타산이 맞지 않으니까요. 사실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니까요.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인생을 두고 '에피소드'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에피소드(episode)의 접두사인 epi-는 '덧붙여서'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커다란 자연 속에 우리 인생은 잠시 덧붙어서 살다가 끝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아무것도 없던 '무위'의 세계에서 나라는 사람과 나의 소유물들은 잠시 '덧붙여' 존재하다가 다시 무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아무리 노력해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덧붙여진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멀리서 바라보면 물과 공기의 순간적인 반응으로 인해 우연히 생겨났다가 곧 사라지는 거품 같기도 합니다. 누구도 그 거품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생겨났고, 수면 위를 전전하다가 어느 순간 적절한 시기가 되면 터져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너무 큰 거품은 금세 터져버리고, 작은 거품은 꽤나 오래가기도 합니다. 거기에 몇 방울의 화학물질이 첨가되면 다른 거품보다 더 크고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거품이 되기도 하고요.
우리 눈앞에 있는 물질들도 우리 마음이라는 물속에 거품과도 같습니다.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결국 소유하고 있지만, 소유와 동시에 소유욕은 거품처럼 터져버립니다. 이렇게 그 욕망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물질 또한 알 수 없는 곳으로 자취를 감추곤 합니다. 몇 년 전, 유행한다고 샀던 옷이 옷장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결국 의류함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결국 우리의 눈 밖으로 터져버리고 마는 것이죠.
공짜로 얻은 건 없는데, 분명 노력을 통해서 얻었는데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하지만 또 결국 사라질 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하면서 삽니다. 이미 과거의 거품은 터져버렸으니 더 좋은 거품을 얻으려고 말이죠.
언제까지 이렇게 거품처럼 사라질 것들을 위해 노력을 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없어지지 않을 것을 위한 노력은 없을까요? 덜 고통스럽고 가성비 좋은 인생을 위해서 말이죠.
"죽음으로 의식은 소멸하지만 그때까지 그 의식을 만들어 낸 것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과 행복론>
눈에 보이는 것들을 얻고자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무시하기 쉽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좋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1. 올바른 사랑
2. 뛰어난 정신
3. 바람직한 신념
4. 선한 영향력
5. 감동적인 스토리
이러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더라도 그 사람이 남긴 사랑, 정신, 신념, 영향력과 스토리는 죽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진짜 좋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남을 사랑보다는 쾌락적인 사랑을 위해서 살고, 뛰어난 정신보다는 흐름에 맞춰서 정신을 바꾸죠. 신념을 갖기에는 너무 무섭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이기도 합니다. 이런 인생에서 감동적인 스토리는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극적이고 쉬운 길을 찾아가고, 영원한 것이 아닌 사라질 것들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어느 순간 이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이를 되돌릴 용기는 뛰어난 정신, 바람직한 신념에서 나오곤 하니까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거품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의 빛깔 자체를 바꿉니다. 죽어도 죽지 않고 기억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색으로 이 세상을 물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죽었지만 이 세상의 전부 혹은 일부는 그들의 색으로 변해있기에 그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것이죠. 그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을 위해 노력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극단적인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의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현실적 편안함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물들이 내 생존에 큰 지장이 없는 수준이라면, 어느 수준에 만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족을 하고 남은 우리의 에너지를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위해 노력하며 가성비 좋은 인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위해서 꾸준히 노력한다면 우리는 더 좋은 노력으로 더 나은 인생을 만드는 차원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내 옆 그리고 저 멀리에 있는 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귀한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세요. 떳떳하고 바람직한 신념으로, 내 인생 자체를 멋진 스토리로 만들며 선한 영향력을 주면서 살아가세요.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은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고통스럽지 않으며,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서 권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내면에서 느껴지는 행복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가치있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자체가 완벽한 스토리가 되겠죠.
적어도 한 순간 거품처럼 터져버리는 허망한 인생을 살지는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