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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자 Apr 29. 2024

면교 가는 길 : 헬로키티 크록스

'24. 4. 27. (토)

우리 공주는 26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패션에 대한 주관(?)이 뚜렷하다. 그 나이 때 아기들은 부모님이 입혀주는 대로 입고, 신겨주는 대로 신는 줄 알았는데, 공주는 아니다. 본인이 맘에 드는 옷과 신발만 신는다. 그래서 함부로 인터넷에서 옷이나 신발을 사서 주지도 못한다. 맘에 안 들어하면 절대 입지 않으니까. 


"이거 맘에 들어? 입을 거야?"

"응! 집에 가져가!"

라고 이야기 하는 것만 입는다. 그리고 당연히 매장에서 사야지만 성공률이 높다. 


그런 공주가 좋아하는 신발이 있다.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겨울용 샌들이다. 샌들 안쪽에는 털이 복슬복슬하게 들어 있다. 벚꽃도 지고, 이젠 반팔을 입고 다녀도 될 만큼 더워진 이 계절에 우리 공주는 다른 여름신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 신발을 고른다. 보기만 해도 더운데.. 꼭 그 신발을 신어야겠다고 한다. 


"공주! 아빠가 신발 사줄까?"

"아빠가 고양이 그려져 있는 여름 신발 사줄게!"

웬일로 "웅!"이라고 대답한다. 

본인도 발이 더웠던 걸까..


지난번에 리뉴얼로 인해 문을 닫았던 다산에 있는 아울렛 키즈카페를 우선 들린다. 이젠 정말 키즈카페가 재미없는 것 같다. 혼자 놀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너무 자주 와서 시시해진 걸까. 한 시간도 못 놀고서는 오늘도 '엄만테 가자!'를 외쳐댄다. 그러고 나면, 음료수와 과자로 안정시키고, 더 놀게 한다. 하지만, 이제 확실히 키즈카페는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무언가 다른 것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만테 가자!'라는 말이 아빠에게 무기라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엄만테 가자!'라고 하며 안아달라고 두 손을 벌린다. '안 돼. 공주 걸어가자~'라고 하면 떼를 쓰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안아줘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엄만테 가자!'라고 외치면 이것저것 맛있는 것을 사주니까. 더 자주 외치는 것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먹을 때만큼은 엄마도 잊은 채로 맛있게 먹으면서...


지난번에 보았던 헬로키티 크록스를 다시 보러 간다. 지난번에는 맘에 안 든다고 했는데, 다시 신겨보았다. "공주 맘에 들어?". "고양이 신발! 조아!". "이거 신고 갈까?". "응!" 안 그래도 더워 보이는 신발을 가방에 넣고, 헬로키티 크록스 택을 가게에서 떼고 신고 나온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크록스 매장에서 또 한 번 땡깡을 핀다. 살짝 넘어질 뻔했는데, 그러고 나서는 또 울어댄다. 

아빠 혼자 나와서 신발을 사신 키는 게 안타까웠는지, 바로 택을 제거하고 교환, 반품에 대한 리스크 없는 손님이 반가웠는지 모르겠지만, 사장님은 우리에게 잠깐 기다려보라고 한다. 그러더니 토끼모양 비눗방울을 가져다가 공주에게 선물로 준다. 토끼 비눗방울을 받아 든 공주는 금방 표정이 변한다. 


"토끼다!"

"토끼가 영어로 뭐야?"

"래빗!"

요새 동물 영어이름을 외우는데 재미를 붙인 공주. 다른 동물들도 곧잘 이야기한다. 


"공주 뭐 먹고 싶어?"

"스파게티!"


아울렛에 있는 스파게티 집에 간다. 공주와 단 둘이 스파게티를 먹다니, 뭔가 감회가 새롭다. 아이가 먹을 거니까, 덜 짜게, 푹 익혀서 조리해 달라고 주문을 한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공주의 먹방이 시작된다. 포크로 먹다가 얼마 남지 않으니 그릇을 들어서는 입으로 스파게티를 후루룩 한다. 당연히 입과 볼 주위에 스파게티 소스가 다 묻었다. 너무 귀엽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공주에게 이야기를 한다. 

"공주! 아빠랑 있는데, 엄마 보고 싶어?"

(이야기를 안 한다.)

"엄만테 가자고 하면 아빠가 맛있는 거 사줘서 그런 거야?"

(이야기를 안 한다.)

"공주. 엄만테 가자고 말하지 않아도, 아빠는 공주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줄 거야. 음료수 먹고 싶으면 음료수 먹고 싶다고 하고,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이야기해. 아빠는 다 해줄 수 있어." 


자주 보지 못하는 아빠에게 부탁하는 게 어려워서, '엄만테 가자'라는 무기로 사랑을 갈구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니 공주의 마음속에서 아빠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조금 슬펐다. 어렵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직은 어려운가 보다. 오랜만에 코끝이 찡해졌다. 


전 사람이 이야기하길, 아빠가 오기 전에 그렇게 기다렸다고 하는데, 아빠랑 나가자마자 '엄만테 가자'라고 이야기하는 공주. 


아빠가 아직 많이 서툴러서 그런 거겠지? 더 재미있게 해줘야 하는데, 엄마랑 있는 것보다 더 신나게 해줘야 하는데. 아빠가 아직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물질적인 거 말고, 그냥 키즈카페에서 방방 뛰는 것 말고, 아빠랑 공주가 소통하면서 케미를 키울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볼게. 


그리고.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도 돼. 

'엄만테 가자!'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아빠는 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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