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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자 May 07. 2024

면교 가는 길 : 어린이날 선물(feat. 실바니안)

'24. 5. 6. 

어린이날이었다. 

어딜 가야 하나 한창 고민했다. 요새 너무 키즈카페, 아쿠아리움같이 시설에만 데리고 가다 보니, 아빠와의 교감 없이 시설에서 혼자 노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아빠와의 대화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하러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에게 정을 못 붙이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냥 동네 놀이터를 가서 놀까. 모교에 가서 연을 날리고 놀까. 생각을 했었는데, 하필 어린이날 연휴에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선택지가 많이 줄어든다. 결국에는 가까운 스타필드로 향한다. 


1주 만에 본 공주는 더 까무잡잡해져 있었다. 요새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본 할미, 할비와 같이 스타필드로 향한다. 


어린이날 연휴에 스타필드 치고는 한산했다. 비가 와서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린이날 전날부터 이미 한바탕 휩쓸고 간 듯한 느낌이었다. 평소에도 선물에 인색하진 않지만, 어린이날이니까. 스타필드 3층에 있는 장난감 가게로 향한다. 가자마자 고양이를 보는 공주. 


"이건 집에 있고, 이것도 집에 있어!"라고 이야기하며, 이제 집에 있는 것은 필요가 없다는 의사표현을 한다. 그 와중에 유모차를 탄 고양이에 꽂히긴 했지만, 그전 고양이 인형과 별반 다를 것은 없어 보였다. 유모차가 하나 추가되었을 뿐. 그래서 공주에게 이야기한다. 


"공주 다른 것도 구경하고, 없으면 고양이 인형 사러 오자!"

이리저리 선물 샵을 휘젓고 다니다가 공주 키보다도 높은 테이블에 멋지게 전시되어 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실바니안 패밀리였다. 여자아이 장난감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실바니안은 들어봤다. 그 장난감의 중독성과 확장성이 어마무시해서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한 번 입문하면 텅장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마치 키즈카페에 있는 미니어처 집, 인형들처럼 그 테이블에서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그 조그마한 고양이 인형을 미끄럼틀을 태우기도 하고, 침대에 눕히기도 하면서. 당연히 얌전히 놀지는 않는다. 미끄럼틀을 분해되어서 바닥에 떨어지고(ㅋㅋ) 잘 조립되어 있는 모형을 이리저리 헤집고 계시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은 공주가 이걸 가지고 놀기에 무리라고 생각해서, "공주 다른 거 구경하러 가자~"라고 이야기하니, 그 자리를 절대 고수한다. 계속 놀고 있다. 


'아. 이거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그마한 '실바니안 캐슬'과 '버스'를 들고서는 공주에게 선택권을 준다. "공주 이거랑 이거 중에 어떤 거 가져갈까?". "이거!"라며 당당하게 '캐슬'을 고르는 공주. 그런데 그 깔려 있는 수많은 동물들은 별도구매다. '캐슬'을 하나 사면 동물은 한 마리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동물은 아주 조막만 한 게 두 마리에 10,000원 정도(어린이날 세일 가격)이다. 공주가 좋아하는 고양이랑, 귀엽게 생긴 치와와를 골라주었더니 이래저래 선택을 못한다. 실바니안을 모두 합쳐서 십만 원 이상 사면 2만 원이 할인되기에, 어느 정도 채워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너무 조그마한 인형보다는 큰 인형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오는 토끼가족이 있었다. 엄마토끼, 아빠토끼, 그리고 아기토끼가 아주 귀엽게 웃고 있었다. 아기 동물이 두 마리만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아빠랑 같이 있는 동물을 세트로 사주는 게 좋아 보였다. 그렇게 '캐슬'과 동물 3세트를 결재하고 들고 나왔다. 

지난주엔 그렇게 좋아하던 스파게티를 먹으러 갔더니, 이번주에는 별로인가 보다. 아무래도 어린이용 스파게티를 먹으니 맛이 별로인 것 같다. (내가 먹어봐도 별로인 듯) 벌써 입이 참 고급지다. 참. 


오늘도 여전히 "아빠 안아~"를 연신 외쳐대며 스타필드에서 500미터도 걷지 않았던 공주. 집에 돌아와서 실바니안 친구들 포장을 풀으니 아주 신이 났다. 어른들이 봐도 귀여운 실바니안 인형은 공주 눈에 너무나도 귀여워 보였 나보다. 평소에는 고양이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내가 골라준 토끼 가족을 엄청 좋아한다. 뿌듯했다. 그걸 보면서 아빠의 존재를 조금이나마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처음 보는 실바니안이 참 맘에 들었나 보다. 데려다주고 나와서도 전 사람에게 카톡이 온다. 정신 팔려서 가지고 놀고 있는 공주의 모습.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지고 노는 모습까지.. 참 많이 좋은가보다. 나도 참 좋다. 


무궁무진한 실바니안의 세계에 들어갔지만, 그래도 공주가 좋아하는 것을 해줄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공주가 좋아하는 것을 언제든 여유롭게 해 줄 수 있는 아빠가 되어야겠다. 경제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이번 어린이날은 참 좋았다. 

이렇게 좋은 감정도 드는 걸 보니, 이렇게 사는데 나도 꽤나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다. 예전만큼 울지는 않으니까. 주말에 가끔 봐도 해줄 수 있는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니까. 


우리 공주한테 실바니안 사주려면 열심히 살고, 돈 많이 벌어야겠다. 

사랑해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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