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D-25
이번 추석에 근무를 서게 된 남편. 추석 연휴 마지막날, 남들보다 조금 늦게 귀성길에 올랐다.
출발 며칠 전부터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
'어머님, 아버님께 퇴사 얘기를 어떻게 꺼내지'
결혼한 지 1년 만에 퇴사를 결정해 버린 며느리, 결혼 초부터 이런 불효가 어디있나 싶다.
자식과 며느리가 좋은 회사에 다닌다며 내심 기뻐하셨는데 마음 한켠 불편한 마음 가득한 채로 시작한 연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아버님께서 평소처럼 물으셨다.
"요즘도 계속 집에서 근무하니?" (참고로 난 재택근무자다)
"어... 저... 그게..."
차마 입을 떼지 못하겠어서 그냥 넘어가 버리려 했던 그때, 옆에 있던 남편이 대신해 준 대답.
"와이프 다음 달에 퇴사하기로 했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대요. 잘할 것 같아요"
순간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님이 막 입을 떼시려던 그때
"그래, 우리 며느리가 한 결정이면 그게 맞는 거지. 하고 싶은 걸 일찍이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먼저 나온 어머님의 대답.
난 도대체 전생에 무슨 공을 세운 걸까.. 며느리가 시집온다며 평생 지내셨던 명절 차례도 없애주신 어머님이셨다
이번 추석도 혼자 먼저 내려가겠다던 나를 극구 말리시고, 오는 길이 힘드니 다음 명절부턴 연휴 넘겨서 오라고 하시던 어머님.
항상 내 편이 되어 주셨지만 이번 일은 남편도 힘들어지는 일이었기에
한소리를 들으면 어쩌나, 반대를 하시면 뭐라 말씀드리지라고 걱정했는데 이번에도 한결같이 내 편을 들어주시는 나의 어머니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았지만 그냥 이 말만 드렸다
"잘할게요. 열심히 잘해볼게요"
나를 대신해 대답해 준 남편에게도, 나를 믿어주신 어머님께도, 조금은 놀라셨지만 별말 않으시던 아버님께도..
모두에게 한 대답.
퇴사라는 큰 결정 앞에서 나를 조건 없이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얼마나 기쁘고 복 받은 일일까?
'퇴사'라는 건 혼자서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또다시 한번 느끼며
앞으로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추석 마지막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