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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s Jan 22. 2024

6) 착한 사마리아인의 후회

6) 착한 사마리아인의 후회


우리 옛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이런 일을 겪는다면 억울할 것이다.




112 신고 No. 1111 [사람이 차로에 서있다.]


8월의 여름날 밤,

나는 원 순경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신고자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나는 신고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신고자는 어떤 남자가 도로에 서 있어 위험해 보였다고 했다.


도로 밖으로 나오라고 그를 향해 소리치자 그가 다가오더니 들고 있던 우산을 갑자기 휘둘러 자신의 머리를 때리고 욕설을 하며 어디론가 걸어갔다는 것이다.


나는 신고자의 부상부위를 살핀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폭행 행위자를 찾아야 했다.

왕복 8차선 도로 주변은 가로 수만 있었다.


가로수 뒤 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동료는 그곳으로 갔다.

폭행 행위자로 추정되는 남자가 약 1미터 정도 길이의 우산을 휘두르며 지나던 행인을 위협하고 있었다.


행인들은 좌우로 그 자리를 피했다.

신고자의 지목에 따라 그가 폭행 행위자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행패 부리는 남자에게 다가서며 대화를 시도했다.

"진정하세요! 무슨 일로 화가 난 거예요?"


남자는 소리치며 말했다.

"내가 내길 가겠다는데 어떤 놈이 막았어!", "다 죽인다!"

그는 흥분 상태에서 또다시 우산을 휘둘렀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으면서 넘어졌다.


나와 동료는 빠르게 행패자의 몸을 손으로 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특수폭행 등 혐의로 체포하려고 했다.

그런데 누르고 있던 손끝에서 축축한 느낌이 났다.

시선을 그쪽으로 옮겼다.


행패 부리던 남자의 무릎 부분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바지를 걷어 올렸다.

무릎에 상처가 있었다.


넘어지면서 무릎에 깊은 열창(피부가 찢긴 상처)이 생긴 것이다.

상처부위가 벌어져 무릎뼈가 보일 정도로 개방되어 있었다.

나는 처벌보다는 치료가 먼저라고 판단했다. 119 구급대를 통하여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하기로 했다.


이 남성은 도와주려는 구급대원과 경찰관에게 손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경찰관이 사람 잡는다!"

난감했다.

그의 고함으로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지켜보고 있던 시민 한 명이 다가와서 참견했다.


그 시민은 경찰관에게 항의했다.

"경찰관! 너무 강압적으로 하는 거 아니야?" 다짜고짜 반말 섞인 말로 항의한다.

(경험상 이런 사람 대부분은 경찰관의 범인 검거, 제지, 보호 활동에 관한 전문성을 의심하는 자들이다.) 


나는 시민에게 지금 이런 상황이 보이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관에게 항의를 계속하면서 행패하고 있던 남성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얼굴을 내미는 순간...... 


행패하고 있던 남자의 주먹에 안면을 얻어맞았다.

그 시민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경찰관 뒤로 몸을 숨겼다.


나와 동료 그리고 119 구급대원은 오랜 시간 그를 설득했다.

행패행위를 이어가던 남자는 지쳤는지 병원치료받겠다고 동의했다.


그는 우산으로 사람을 때렸다.

도움을 주고자 했던 시민을 적으로 만들었다.

형법에 따라 그를 특수폭행 피의자로 입건하였다.


도움을 주고자 했던 신고자는 특수폭행 피해자가 되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경찰관님 다음부터는 못 본채 해야겠습니다. 도와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이렇게 되어 억울합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라는 옛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우리는 가끔 언론에서 어떤 범죄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민들의 신고 및 도움이 아쉬웠다는 내용의 뉴스를 접한다.


하지만 위에 소개한 사례뿐만 아니라 2016년 서울 지하철에서 의식을 잃은 여성을 발견하고 응급조치한 시민을 오히려 성추행 범죄자로 고소하고 합의금 요구한 사건,

2008년 안산에서 강도 피해자를 도와주었던 시민이 반대로 피소되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선의를 갖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착한 사마리아 법'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착한 사마리아 법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몇몇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 법'은 신약성경에서 유래된 법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조 불이행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다.


도입 관련하여 의견이 반반 나뉘었는데 찬성 측은 착한 사마리아 법이 시민의 도움 의무를 강화하고, 구조기관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반대 측은 착한 사마리아 법이 시민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논의는 있었으나 법률화 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는 타인에 대한 구조 및 범죄 신고 관련, 그 선택은 개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다.

(단, 신고 의무자는 예외)                                       


나는 학교에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요즘은  당사자 사이의 사소한 다툼에도 "법대로 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개인적으로  말은 마치 '개인 간 갈등을 법이 해결해 줄 수 있다.'라고 믿는 내면화된 의식을 표현하는 것 같다.


법대로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각박해져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증거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착한 사마리아 법을 도입할지, 안 할지에 대해 알 수 없다. 하지만 법률로 강제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시민사회를 개인적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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