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 16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다.
추우니까 겨울이고 겨울이니까 추운 건데 아이를 낳은 뒤로는 도무지 겨울이라는 계절에 적응을 할 수가 없다.
아직 12월도 되지 않았는데 발이 시려서 보일러를 틀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는 건 나이 탓인지, 겨울에도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지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한껏 웅크린다.
아아만 마시던 내가 벌써 이틀째 아아 뒤에는 반드시 뜨아를 내리는 거다.
추위에 은근슬쩍 올라타 창궐하는 독감도 폐렴도 너무나 밉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재채기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컥컥 사레들린 소리만 나도 기침인가 싶어 또 철렁한다.
눈 내리는 날의 낭만 따위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눈 소식만 들어도 얼어붙을 길이 떠오르니 스트레스가 올라온다.
나는 겨울이 싫다.
추워서 싫고, 미끄러워서 싫다.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많이 들려 싫다.
옷이 무거워서 싫고, 옷이 비싸서 싫다.
윈터타이어를 장착하러 가는 것도 싫다.
두어해 전부터는 난방비도 비싸져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이쯤이면 프로 불만러인가.
아, 내가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닌데 싫기는 정말 싫었는지 너무 길어지고 말았다.
늦가을부터 쌀쌀해진 날씨에 계속해서 옷 쇼핑을 하고 있다. 내 옷이나 남편 옷도 슬쩍 끼워 넣긴 하지만, 대부분은 아이 옷이다.
아이는 아직 한창 크는 중이라, 계절마다 짧아진 소매와 바짓단에 계속해서 새로 옷을 구입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올 초에 구입했던 외투가 아직 보기 좋게 맞았다. 급성장기가 끝난 것이 확실하다.(좀 아쉽네...)
이상하게 아이 옷은 사도 사도 부족한 느낌이 든다.
올 겨울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중 작아진 것을 제외하고 숏 패딩 하나와 롱패딩 하나로 충분한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날이 추워지자 한 개는 더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뒤늦게 올라왔다.
그리하여 부랴부랴 숏패딩 하나를 더 장만했다.
구스인 데다가 신상품이라 가격이 꽤 나갔다.
키가 자라 성인 사이즈를 입으면서부터는 조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 적당한 가격대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조건을 추가하다 보니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아이 옷을 이 가격에 사는 게 맞나, 과소비인가 싶다가도 지금 상황에 딱 맞게 고른 옷인 걸 어쩌겠어하는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내 옷이었다면 99.99%의 확률로 구입하지 않았을 거다. (외출을 많이 하지도 않거니와 먹는 것에 쓰는 돈은 안 아까워도 비싼 옷을 사는 것은 꺼리게 되었다. 이것도 아이를 낳은 뒤에 생긴 최근의 변화다.)
이것저것 떼고 툭,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좋은 걸 입히고 싶었다. 겨울이니까, 추우니까. 뭐 구스라고 확실히 더 따뜻할까, 신제품이라고 더 따뜻할까 잘 모르겠지만서도, 형편이고 뭐고! 이왕이면이라는 뒷말이 따라붙는다.
얼추 이 정도 사이즈면 이제 내년에도 입을 것 같은데? 작아지면 아빠가 입어도 되지 않겠어? 라며 이상하게 드는 '과소비라는' 양심의 가책을 싹 지워버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얼마 전 친정 부모님과 만났을 때의 일이다.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로 옮겨 수다타임을 갖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한 번 만나고 돌아오면 목이 쉬거나 아플 정도로 이야기할 거리는 언제나 넘친다. 카테고리는 주로 추억 곱씹기.
(남편은 아직도 이런 분위기가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왜?! 너무 즐거운데!)
"백화점에 갔는데, 얘가 갖고 싶은 게 있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뭐냐고 했더니 가방이래. 그래서 그럼 사라고 했지? 그런데 글쎄 명품을 고르더라고."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당시 경제적으로 조금 어려웠던 시기였다고, 그래도 딸내미가 갖고 싶다니 기쁜 마음으로 사주셨다고.
기억력이 나빠졌다 나빠졌다 해도 아버지보다 더할 줄이야. 내가 기억하지 못하자 아버지가 가방 디자인을 묘사하시는데 그제야 무릎을 탁 치며, "어! 그게 아빠가 사주신 거였어?" 한다.
으이그...
명품까지는 아니고 당시 물가를 생각해 보면 고가의 가방이기는 했다. 아빠가 사주셨기 때문에 더 기뻤을 텐데 어떻게 그걸 잊고 살았을까.
남편은 회사일로 시간 내기가 쉽지 않으니 보통 부모님, 남동생, 그리고 나와 아이 이렇게 다섯이 모이는 일이 보통이다. 그렇게 식사를 하면 식사비용도 만만치가 않은 편이다.
식사를 마치고는 눈치게임이 펼쳐진다. 누가 누가 빠른가, 한 번은 화장실에 다녀오는 척하고 일어섰다가 계산대 앞에서 검거당한 일도 있었다.
"너네가 무슨 돈이 있어?!"
아니, 어떻게 매번 아버지가 내시냐고!
부모 마음이 다 그런 거라고, 사줄 수 있으니 행복한 거라고 하시면 또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자식이 부모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자식 생각 하는 것에 비할까?
비록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하나를 가졌지만 열을 주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물론 물질적인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엊그제 시어머니께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그러모아 채워주신 택배박스를 들여다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우리가 감을 못 사 먹어서, 집에서 입을 티셔츠가 없어서 보내셨겠냐고!
나이가 들고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그땐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
가끔은 궁금해진다.
청소년, 너는 아느냐? 내 마음을?
(엄마도 랍스타 좋아했다...)
학생이 이런 옷을 입는 게 맞는 거야? 사치야 사치!
제가 사달라고 안 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