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니콜라이 구밀료프
잃어버린 전차
니콜라이 구밀료프
나는 어떤 길모퉁이에서 길을 잃었는지 몰라, 알려진 지평선 위로 전차가 날아가네. 네 개의 발자국이 울려 퍼지네. 길고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은 번개와 같네. : 바퀴 뒤편으로는 우레가 울리고 빛이 번쩍이고 철로가 동시에 끊어지고… 자, 문 앞에서, 머리가 별 모양인, 나의 마부가 붉은 턱수염을 흔드네.
그는 말했다. "이제 당신은, 미스, 아무 데도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두 개의 손을 붙잡고, 어깨 위로 보랏빛 햇살과 향긋한 허브와 함께, 우리에게 보이는 저편으로 곧장 가버렸네. : 저편에서 담이 쳐져 있고, 거기, 창문에서 나를 바라보던 저 노파는, 내 심장을 고동치게 만드네. 내 마음의 램프는 꺼져버렸지. 만약 네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알 수 없는 달콤한 바람이 그리고 다리 너머에서 울리는 외침이 들려왔네: "당신은 왜 저기 서 있습니까? 당신은 저 여인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피터!"
저 멀리, 전차 앞 유리창에서, 내가 전에 서 있던, 나는 문득 보았네. 나의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고개만 돌린 채 어두운 통로 위로 나를 따라오는 것을.
마차 정거장 표지판에는 푸른 글씨가 빛나네: "채식가 잡화점. 기둥." 그리고 뚜껑이 열린 상자에는 잘린 인간의 머리가 담겨 있었네.
붉은 셔츠를 입은 사형 집행인은 바로 내 앞에서 머리를 잘라냈지. 머리는 집사가 침묵 속에 누워있던 곳을 향해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네.
여기에는 집들이 아닌, 낡은 교회들이 있고, 강가에는 사과 같은 붉은 흙이 흐르고, 그리고 전차가 다시 덜커덕거리네. 시간이여, 멈춰! 너무 늦었어!
신성한 이즈키엘¹은 나에게 이즈음의 환영을 보여주었지. 그리고 그곳에는 구리로 된 별이 달린 천사 하나가 나의 어깨 위로 굽혀진 채 서 있었네.
창문 뒤편으로는, 어떤 영혼의 고통 속에서, 그녀가 외치네: "아멘!"… 그녀는 너무나 창백하고, 그리고 심지어, 그녀는 카르다시²가 되어서도 외쳤네.
그리고 어렴풋이, 내가 잠들었을 때나 꿈속에서, 그녀는 나에게 소리를 질렀지. 네바강을 건너, 자작나무 숲을 통과하며, 그리고 세 개의 손이 나를 쫓아왔네.
나는 보았네, 한 여인이 서 있었지. 그녀의 얼굴이 피로 얼룩졌고, 그녀의 눈물은 뜨겁게 흘러내리네. 나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제 기차가 지나가고, 그건 끝이 났어… 친애하는 마샤,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아네. 바로 그 교회에서, 네가 노래했고, 촛불을 켜고, 너는 나의 키스를 금지했었지⁴.
네가 얼마나 늙고, 얼마나 아름다워졌는지! 너는 더 이상 나의 영웅이 아니야. 하지만 그 노파에게서 불타는 듯한, 나의 가슴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네.
마지막으로: 나는 네가 숨 쉬는 곳을 아네. 당신이 그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못 할 거야. 그리고 시간의 영광을 보여주는 두 개의 손을 가진 사도가 당신을 쫓아오네.
그에게로 가! 카인을 부활시킨 바르푸티³에게로! 그에게 가! 그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열차의 끔찍한 바퀴를 당신의 부드러운 발로 멈추게 할 수 있기를!
[註]
1) ‘이즈키엘(Ezekiel)은 구약성경의 에스겔(겔 1장)을 러시아어로 음역한 이름이다. 그는 성경에서 하늘의 환상과 묵시록적 예언을 본 선지자. 시 속에서 이즈키엘은 화자에게 "환영(visions)"을 보여주어, 전차의 여정이 단순한 악몽이 아닌, 신성하고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닌 초월적인 체험임을 암시한다.
2) '카르다시'는 구밀료프 시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존재로, 시인의 마지막 연인 마리아 쿠즈미나-카라바예바의 애칭이나 별칭을 암시하며, 평론가들은 개인적 고통과 환상적 변이를 나타내는 복합적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3) 바르푸티(Варфутий)는 성경 외전에서 '카인을 부활시킨' 것으로 알려진 인물. 구밀료프의 시에서 죄와 죽음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상징한다. 화자는 죄의 원형인 카인을 되살리는 바르푸티에게 가라고 촉구하며, 용서와 구원을 통해 파멸적인 전차의 질주를 멈추려는 절박한 희망을 표현한다.
4) 마샤 (Маша)와 ’금지된 키스‘는 실패한 과거의 사랑, 속죄의 대상, 그리고 구원의 희망을 상징하는 복합적인 은유이다. '마샤'는 구밀료프의 전 아내인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를 비롯한 주변 여성과의 복잡한 관계를 투영한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키스를 금지'했다는 것은, 시인이 그녀에게서 정서적 거리감이나 거절을 경험했음을 암시한다. 마지막에 그녀의 '부드러운 발'만이 끔찍한 전차를 멈출 수 있다고 호소하는 것은, 파괴적인 역사의 광기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과 용서, 그리고 순수한 헌신뿐이라는 시인의 간절한 염원을 보여준다.
[詩評]
'잃어버린 전차': 혼돈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영혼의 묵시록
니콜라이 구밀료프의 '잃어버린 전차 (Заблудившийся трамвай)'는 단순한 시적 환상을 넘어, 20세기 초 러시아의 격변하는 시대상과 시인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아크메이즘 시(詩)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1919년경에 쓰인 이 작품은, 아크메이즘이 추구했던 사물의 명징한 아름다움과 구체적인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상징주의의 신비적이고 다차원적인 공간을 아우르는 독특한 시의 경지를 개척했다.
1. 전차: 혼돈 속으로의 탈주와 시간의 파괴
이 시의 중심 매개체인 '전차(Трамвай)'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교통수단인 동시에, 시간과 공간의 질서를 깨뜨리는 초월적인 장치이다. 화자가 정체 모를 길모퉁이에서 갑자기 전차에 뛰어오르는 순간, 현실 세계의 인과율은 무너지고, 전차는 "알려진 지평선 위로" 날아가며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이는 시인이 몸담았던 혁명 전후의 러시아 현실, 즉 이성이 마비되고 역사의 궤도를 이탈한 혼돈의 시대를 반영한다.
전차의 여정은 현실의 도시인 페테르부르크/페트로그라드의 지명을 암시하면서도, '네바강', '세 개의 다리'를 건너 '외국의 하늘', 그리고 '잘린 인간의 머리가 담긴 상자'가 있는 끔찍한 장소로 덜커덕거리며 달려간다. 이는 전차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닌, 삶과 죽음의 경계,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영혼의 여정임을 시사한다. 특히 전차 정거장 표지판에 적힌 '채식가 잡화점'과 '잘린 인간의 머리'라는 초현실적인 대비는, 혁명적 광기에 휩싸여 인도주의가 파괴된 현실에 대한 냉소와 경악을 드러낸다.
2. 마부와 '별 모양 머리': 예언자적 운명의 인도
전차를 조종하는 붉은 턱수염의 운전수와 그의 '별 모양 머리'는 주목해 볼 만한 신비적 존재다. 운전수는 단순히 전차를 모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을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데몬(Demon) 또는 운명의 메신저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화자에게 "이제 당신은, 미스, 아무 데도 가지 못합니다"라고 선언하며, 이미 정해진 운명의 궤도 위에 있음을 각인시킨다.
이와 연결하여 '신성한 이즈키엘'의 환영, '구리로 된 별'을 단 천사의 등장은 이 여정이 단순한 악몽이 아닌, 성서적이고 묵시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구밀료프는 아크메이스트였지만, 그의 시에는 늘 낭만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탐구가 내재되어 있었다. 이 시는 그가 바라본 러시아의 역사적 대격변을 개인의 운명과 결부시켜 종말론적인 예언으로 승화시킨다.
3. '마샤'와 용서의 문제: 개인적 비극과 구원
전차의 여정은 과거의 아픈 기억, 특히 '마샤 (Маша)'라는 여성과 관련된 개인적인 비극으로 회귀한다. 마샤는 화자가 과거에 사랑했으나 "키스를 금지"당했던 인물로, 후회와 미련, 그리고 속죄의 대상이다.
화자는 "나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지만, 결국 마지막 연에서 독자에게 마샤에게로 가서 "그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기를" 간구하고, "이 열차의 끔찍한 바퀴를 / 당신의 부드러운 발로 멈추게 할 수 있기를" 촉구한다.
이 '마샤'는 구밀료프의 실제 삶과 연관된 여러 여성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보다 폭넓게는 시인이 잃어버린 과거의 순수성, 종교적 구원, 또는 구원받아야 할 조국 러시아 자체를 상징할 수 있다. 전차의 끔찍한 질주는 멈출 수 없는 혁명의 수레바퀴이며, 시인은 그 폭주를 멈출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사랑과 용서, 그리고 헌신(마샤의 '부드러운 발')에서 찾으려는 절박한 시도를 보인다.
'잃어버린 전차'는 구밀료프가 1921년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되기 불과 2년 전에 쓴 작품으로, 파괴적인 역사와 비극적인 개인의 운명을 환상적이고도 섬세한 이미지로 직조해 낸 20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이정표같은 빛나는 작품이다. 이 시는 아크메이즘의 명료함 속에 깊은 비극성과 예언자적 통찰을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영혼의 구원과 시간의 의미를 질문하게 한다.
'잃어버린 전차' 속 '마샤'의 수수께끼: 금지된 사랑과 구원의 은유
이 시의 결말부에 등장하는 '마샤(Маша)'라는 이름은, 이 시의 개인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여는 중요한 열쇠다. '마샤'는 단순한 등장인물을 넘어, 시인이 겪었던 사랑의 비극과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절실히 필요했던 구원의 대상을 복합적으로 그리는 상징체이다.
1. 마샤: 과거의 헌신과 금지된 키스의 기억
시 속에서 '마샤'는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이미지를 동반하며 나타난다.
"친애하는 마샤,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아네. / 바로 그 교회에서, 네가 노래했고, 촛불을 켜고, / 너는 나의 키스를 금지했었지."
이 구절은 '마샤'가 종교적 헌신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화자인 시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단절이나 금기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촛불을 켜고 노래하는 행위를 통해 순결하고 영적인 이미지로 나타나지만, 동시에 화자의 욕망을 거부함으로써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나 상실감을 안긴 인물로 그려진다. 마샤는 개인의 열정보다 도덕적/종교적 규율을 우선시했던 과거의 사랑을 대변하며, 이는 구밀료프가 처했던 낭만적 갈등의 반영일 수 있다.
2. 안나 아흐마토바 상(像)의 투영 가능성
많은 전기적 해석에서 '마샤'는 구밀료프의 힘들고 복잡했던 결혼 생활의 상대, 즉 러시아 문학의 또 다른 거장인 안나 아흐마토바(Anna Akhmatova)의 이미지를 투영한 것으로 많은 평론가들은 추정한다.
구밀료프와 아흐마토바의 관계는 숭고한 시적 협력과 더불어 격렬한 갈등의 부침을 겪었다. 구밀료프는 수년간 아흐마토바에게 헌신적으로 구애했으나 그녀는 오랜 기간 그를 거부했으며, 결혼 후에도 이들의 관계는 소원했다.
'키스의 금지'는 실제 아흐마토바의 거부와 정서적 거리감을 암시하는 은유로 해석할 수 있으며, 시인의 영혼 속에 깊이 박힌 상처의 뿌리이기도 하다.
'너는 더 이상 나의 영웅이 아니야'라는 구절은, 한때 이상화했던 아흐마토바에 대한 실망감, 또는 부부관계의 현실적인 파경을 시적으로 담아낸 표현일 수 있다.
따라서 '마샤'는 구밀료프 개인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중요했던 여성에 대한 상징으로 기능하며, 시의 비극적 정서를 뒷받침한다.
3. 마샤: 구원과 속죄의 마지막 희망
이 시가 단순한 개인의 로맨스를 넘어선 묵시록인 이유는 '마샤'에게 부여된 최후의 역할 때문이다. 전차의 질주는 멈출 수 없는 역사의 광기, 곧 혁명과 내전의 혼란을 상징한다. 화자는 이 파국적인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마샤'를 지목하며 간청한다.
"그리고 이 열차의 끔찍한 바퀴를 / 당신의 부드러운 발로 멈추게 할 수 있기를!"
'부드러운 발'은 연약하지만 인간적인 사랑의 힘, 즉 순수한 헌신과 용서를 상징한다. 시인은 폭력과 혼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폭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개인의 사랑과 도덕적 구원이라는 마지막 희망을 '마샤'에게 투사한다.
'마샤'는 구밀료프에게 있어 실패한 사랑인 동시에, 시인이 1921년 '처형'이라는 자신의 비극적인 종말을 목전에 두고 간절히 염원했던 영혼의 평화와 세계의 구원을 상징하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은유로 해석되어야 하리라. 그녀는 시인에게 용서받아야 할 대상이기보다는, 시인을 구원해 줄 최후의 대리자로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