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범하게 행복할 용기 이계윤
Dec 17. 2024
결혼하세요?(2)
어차피 평생을 혼자 살기 원하지 않는다면
묵묵히 운전을 하던 기사는
"사실 여성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요. 최근에는."하며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한다.
붉은 신호등이 우리의 여정을
잠시 멈추게 했다.
"팔순이 넘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어머니 혼자 지내게 할 수도 없고
흠....
저도 이렇게 계속 지낼 수도 없고..."
마흔다섯의 싱글남은
이러저러한 과제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음을
소탈하게 고백했다.
"그렇군요.
사실 기사님과 혼인할 여성이
기사님 모친을 모시기 보다는
단둘이 결혼생활을 하고 싶겠지요.
어쩌면 그쪽 부모님도 계실 것이고."
단지 한 인간의 고독이라는
실존적 과제를 넘어
초고령사회의 가족 내 노인복지문제가
함께 얽혀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참 쉽지 않구만."
나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신호등 색은 바뀌어 나를 태운 차량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면서
단 한번 만난 남자와 나는
다시 못 볼수도 있는데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너무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백미러로 비친 기사의 얼굴은
아무리 보아도 이십대 중반이었다.
"외모로 판단하면 안되는데."
그러나 무거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는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저기 코너를 돌면
나와 기사는 헤어지게 된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혹 다시 만난다 하여도
우리가 서로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지
오늘 나눈 대화를 상기할 수 있을지
잘 모른다.
"참 기사님 종교있으세요?"
뜬금없이 질문을 했다.
"아니요."
나는 되물었다.
"여성을 만날 기회가 없다고 했지요?"
기사는 "네"라고 대답한다.
"외람될 지 모르지만
교회 다니세요.
교회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아요.
결혼하고 싶으시면.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믿는 여성이 대체로 착해요.
다니다가 기사님도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도 과히 나쁘지도 않고."
이때 기사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친구도
선생님과 똑같이 말하더라구요."
이윽고 차는 내가 내려야 할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사는 어두웠던 새벽보다
조금 환해진 아침에
더 멋지고 명랑한 얼굴로 나를 배웅한다.
"하하하 평생 혼자 살기싫다면
이번주부터라도 교회에 다니세요.
그래야 좋은 여성 만날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겠지요."
기사는 허리를 굽혀 꾸벅
인사를 하고는 내 앞을 떠나갔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오늘 나눈 대화를 반추해 보았다.
"그럼 싱글 여성들은
결혼을 하려면 어디로 가라고 하지?
그게 문제이구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아니 도리어 해결해야 할 숙제만
쌓여가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보며
나는 한해의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독, 자유. 죽음. 무의미.
그리고 오늘.
하여튼 오늘 만난 기사에게
행복이 넘쳐나기를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