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며 수많은 죽음을 지켜봤다.
죽어가는 이들이 내게 전한 말들을 가슴에 담고, 틈틈이 글로 남겼다.
그럼에도 퇴근 후 방으로 돌아와 씻은 후 천장을 멍- 하게 보는 날이 많아졌다.
변화가 필요했다.
어느 날, 우연히 심폐소생술 강사 모집 공고를 봤다.
3교대 근무자를 배려해준다는 문구에 마음이 움직였다.
병원 안에서는 죽음을 돌보고, 병원 밖에서는 생명을 살리는 법을 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도전했다.
강사가 되기까지는 꽤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면접을 보고 본사에서 승인을 받은 뒤, 곧장 활동할 수 있는 줄 알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견습과 보조 활동을 여러 차례 수행하고, 베테랑 강사들 앞에서 직접 강의 시연을 마쳐야 비로소 ‘강사’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처음에는 제한적으로, 학생 대상부터 시작이었다.
교대근무를 하며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PPT를 만들다 보니 대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 병원 밖의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을 만난다는 것만으로 설렘이 컸다.
중간에 고민도 있었다.
‘그냥 보조만 해도 되지 않을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그래도 이왕이면 끝까지 가보자’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나는 날 괴롭히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악취미가 있다.
드디어 발표 날.
볼은 붉게 달아오르고, 귀 안쪽에서부터 심장소리가 들렸다.
‘나는 심폐소생술 강사다. 나는 할 수 있다.’
혼잣말처럼 반복하며 나를 다잡았다.
발표를 마치고, 합격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서의 실제 경험을 사례로 엮은 구성이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평가를 들었다.
표현이나 전달 방식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 역시 경험으로 채워갈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경험은 참 소중하다.’
그걸 글로 적어내리고, 누군가와 나누는 시간은 내 삶의 원동력이다.
만약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혼돈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3교대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죽음을 보는 거 무섭지 않아요?”
“왜 그런 병동에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짧게 대답한다.
“살기 위해서요.”
나는 배운다. 그리고 글을 쓴다.
그것이 내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나를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