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 Audio ANAYA
킹덤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삼국지를 소재로 일본 만화 특유의 '열혈' 느낌을 잘 버무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중독성을 지닌 명작이지요. 그 만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장군이 보는 경치』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대장군 왕기는 다음 세대를 이어갈 젊은 피, 신이라는 장수를 말에 태우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말을 이해했다면 천천히 눈을 뜨고, 눈에 들어오는 것을 잘 보도록 해요."
"적의 무리를, 적의 얼굴을, 그리고 아군의 얼굴을, 하늘과 땅을"
"이것이 장군이 보는 경치예요."
일개 장수와 대장군이 보는 시야는 말할 것도 없이 다릅니다. 만원짜리 이어폰과 400만원이 넘는 이어폰 역시 표현하고 있는 무대의 크기와 무게감이 다르겠지요. 대장군이 바라보는 시야, 그 전장의 한복판을 그리고 있는 이어폰을 소개합니다. 노블오디오의 아나야(ANAYA) 입니다.
Noble Audio ANAYA
4,460,000원
드라이버 : 2EST / 2 BONE Conductors / 4BA
케이블 : 5N OCC Single Crystal Copper & Silver Plating (0.05mm) 78 Strands
커넥터 및 플러그 : 0.78mm 2pin / 4.4mm
임피던스 : 35Ω
비고 : 15개 한정 수량, 한국 전용 (소나기 / 새벽 / 무지개에 이은 4번째)
위자드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노블오디오의 수장 존 몰튼의 사운드 연출 능력은 마법이라고 불러도 될겁니다. 그 덕분에 겨우 10년 남짓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노블오디오는 이어폰을 가장 잘 만드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됐습니다.
다만 노블오디오는 제가 경험한 브랜드 중에 그렇게까지 체계적으로 라인업이 잡혀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보통 규모가 작고, 사운드를 진두지휘하는 소위 'Key Man'의 영향력이 강한 브랜드일수록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거의 예술가에 가깝기 때문에 아주 계획적으로, 체계적으로 제품 라인업을 만들어가기보다는 그때 그때 떠오르는 영감을 바로 제품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블오디오 제품에서는 '이것은 비싼 소리다' 라는 허무맹랑한(?) 느낌을 일관되게 받을 수 있습니다. 제품의 내관과 외관 모두에서 귀족의 향이 강렬하게 풍기지요. 물론, 엄청난 가격도 그렇습니다.
아나야는 전형적인 미국 사운드입니다. 지구 최강의 국가로 불리는 미국답게 배포가 크고, 음선이 굵으며, 자신감과 웅장함이 넘치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아나야라는 모델명의 어원을 '못믿겠어? 아, 나야~' 라는 자신감 넘치는 한국어에서 찾은 것이 아닌가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봅니다. (본사와는 전혀 무관한 개인피셜)
굵디 굵은 8심 케이블에서는 압도적인 정보량과 무대의 크기로 토대를 쌓고, 거기에 아주 멀리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특이한 느낌의 저음이 크나큰 전장의 긴장감을 더합니다. 이 특이한 저음은 골전도 드라이버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골전도 드라이버를 음질적인 기준에서 분석하면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을겁니다. 윤곽이 또렷하지도 않은데다 반응이 약간 느리고 흐린 느낌이거든요. 그런데도 이런 고급 모델에 골전도 드라이버를 채용한 이유는 기존 저음을 담당하던 다이내믹 드라이버보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아래쪽 헤드룸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어 높은 몰입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간 플래그십 이어폰들에서 사용된 EST는 초고음 음역대를 확장하고, 그만큼 위쪽 공간이 열려있는 듯한 개방감을 선사했습니다. 외부와 완전 단절된 커널형 이어폰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를 충분히 걷어낸 성과를 보였다고 할까요. 그런데 저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음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골전도 드라이버가 하나둘씩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아나야에서도 골전도 드라이버 특유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나야의 고음과 중음, 그리고 저음은 완벽하게 구분되어 있고 그 성격 또한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 제품을 대장군이라든가 큰 전장으로 표현한 만큼 각 음역대를 부대로 묘사해볼 수 있는데, 고음은 유격 부대입니다. 가장 민첩하기도 하고 규모가 작으며, 있는듯 없는듯 존재감이 옅은 부대이지요. 중음은 강력한 돌진 파괴력을 지닌 기마대이며, 주력부대인 만큼 가장 비중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음은 후미의 코끼리 부대입니다. 코끼리 부대는 진군 속력도 느리고 보급도 쉽지 않아 운용이 어려운 부대이지만 압도적인 수준의 파괴력과 전투력을 지녔습니다.
이렇듯 첨예하게 다른 속성의 부대가 한데 모여 전투하려면 각 부대를 적재적소에 투입하고 지휘통솔 할 지휘관의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아니라면 개판오분전이 되고 말겠죠. 아나야는 뛰어난 대장군으로 넓은 전장을 무대로 돌격 섬멸전을 수행하는 이어폰입니다. 스케일이 큰 영화음악, 특히 대규모의 전장이 연출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성능을 낼 것입니다.
이 글은 노블오디오의 국내 디스트리뷰터 『사운드스퀘어』로부터 비용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유튜브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