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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하드 Sep 12. 2024

애 둘 맘은 가끔 '기생충'이 되고 싶다

무계획이 계획

< 2024. 08. 31. 일기장 >


어린이집 하원시간에 만난 어린이집 동기 엄마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언니는 내일 토요일인데 주말에 뭐해요?

몰라!! 어딘가 가겠지....

네?

우리 집은 무계획이 계획이야!!

첫째 어릴 때는 신랑 회사가 바빠서

토요일 출근 유무를 전날 금요일 퇴근할 때 알려주는 아주 친절한(?) 회사라 미리 주말 계획과 약속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디 갈지 미리 정하면 하노~~

푸파파 출근에 어린 첫째와 쭈마마는 황금 같은 토요일 집에서 독박육아 당첨!!

미리 계획을 해봤자 계획대로 안 된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하고 속도 상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주말 계획을 잡지 않는다.

기생충에 이런 대사가 있다!!




계획을 하면 모든 계획이

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 집 주말 풍경이거든......



토요일이 왔다. 

오늘 뭐 할지는 주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머리를 열심히 굴려 본다.

그날의 우리 가족 체력 및 컨디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날씨도 중요하게 따져 본다.

그런데 오늘은 나의 체력과 컨디션이 영 꽝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여자들의 매직 데이, 바로 집콕 싸인이다~ ㅠㅠ

하지만 아이들과 있는 집콕은 휴식이 영 아닌데......

그때 나의 컨디션을 눈치챈 건지 오전 11시쯤 푸파파가 둘째랑 데이트를 갔다 온단다. LUCKY!!

첫째는 이미 댄스 동아리 모임으로 출가(?)중이시고 나의 손놀림은 갑자기 빨라진다. 

빛의 속도로 둘째 옷을 입히고 간식과 물도 챙겨 둘을 거의 내쫓으다시피 밖으로 재촉한다.


어디 갈 거야?


몰라!


차 갖고 갈 거야?

응!

알았어!! 둘째 잘 챙겨 먹이고 다치지 않게 잘 놀아~~

세 명이 다 빠져나간 거실에 혼자 대자로 드러눕고 맘 편히 리모컨을 돌리며 신선놀이에 빠진다.

이 정적과 정막 그리고 다음 끼니 걱정 안 해도 되는 이 홀가분함~~

TV를 보다가 졸리면 낮잠도 자고 배고프면 라면을 끓여 먹고 제발 늦게 와라 늦게 와라 속으로 되뇐다.

이건 마치 주인이 집을 비우면 지하에서 올라와 자유를 느끼는 '기생충'이 된 엄마의 짜릿한 일탈 같다.

2~3시간 정도 흘렀을까. 큰언니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생각난 김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언니, 뭐 해?

아!! 지금 친정 집에 있어!
엄마가 오라고 해서 어제 하룻밤 잤어.

아. 그래?

아빠는?


아빠는 시골에 미리 벌초 가서 엄마 혼자지~~
너 몰랐구나??


응. ㅋㅋㅋ 

오늘은 일이 있어서 이제 집에 가 보려고~~
제부랑 엄마는 방금 떠났어!

푸파파 거기 있었어??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ㅋㅋㅋㅋㅋㅋ

아니~ 아까 나갈 때 어디 갈지 물어봤는데
 자기도 모른다고 하길래~~

아!! 그럼 아빠 벌초하러 시골 가서 엄마 혼자 있는 거 알고 적적할까 봐
둘째 데리고 제부가 왔나 보다.. 사위랑 장모는 통화하나 보다~~
너희 부부는 통화 안 하니?
ㅎㅎㅎㅎㅎㅎㅎ

뭔 통화를 해.
서로 생존만 체크하는 거지. ㅋㅋㅋㅋ
근데 지금 어디로 갔다는 거야?

제부랑 둘째 여기서 점심 먹다가
엄마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했는데
그게 거의 종영작에 상영하는 영화관이 적어서
 이수 쪽으로 제부 차 타고 떠났어!

뭐? 이수? 이수 멀지 않아? 

1시간 30분쯤 걸릴걸?!

못살아.. 

엄마가 보고 싶어 한다는데 대신 사위가 모시고 가니
 언니는 고맙네!!

응.. 이미 출발했다는 거지? 알았어~~~

나 같으면 왕복 3시간 거리 그것도 6살 아이를 데리고 영화하나 보러 그 고생길 생각도 안 하는데 대단하다 싶었다.  이미 배는 아니 차는 떠났다는데 뭐 할 말도 없고 영화관 있을 텐데 전화하기도 뭣해서 전화는 따로 안 했다. 저녁 밥때가 되니 알아서 전화 오는 푸파파~~~


여보~~ 여기 행주대교 건너고 있어.
10~20분이면 집에 도착해!!

응! 엄마랑 같이 오는 거지?

어? 어떻게 알았어? 친정에 스파이가 있구나.
ㅋㅋㅋㅋㅋ
어머님이랑 같이 밥 먹게 저녁 좀 차려 놓아~~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어머님 집에 데려다 드리려고~~

알았어!!

10시에 집에서 나서서 결국 7시 저녁 시간 때쯤 귀가한 푸파파!!

전날 사둔 소고기로 거하게 구워 먹고 엄마랑 수다 한 판! 그리고 각자 본인 남편 험담~~ ^^;;

아빠가 시골에 갔는데 혼자 있으니 너무 편하다며 한 며칠 더 계시다 오셨으면 좋겠다고 ㅋㅋㅋㅋㅋ

나도 오늘 하루 아이들 없고 신랑 없고 자유부인이었는데 너무 좋았다고ㅎㅎㅎㅎ

그리고 말리는데도 배 불러서 소화시켜야 한다고 설거지에 싱크대도 싹 닦아 주신 친정엄마.

벌써 9시가 넘었네~~ 이제 집에 가셔야겠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방에 들어가서 조용한 푸파파.

아니나 다를까 식곤증에 고대로 잠들어버린 것이다. ㅠㅠ


여보, 엄마 가신대~~~ 자기가 데려다 드린다며!!

목청 높여 불렀건만 돌아오는 건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


아이고~~ 깨우지 마라!!
왔다 갔다 운전하느라 푸서방 졸렸을 거다~~

아니야. 깨워야지! 여보!!

아니다. 여기서 버스 한번 타면 30분이면 가는데.
엄마 여기 길 잘 안다.

아이들에게 용돈 쥐워 주고 오늘 잘 놀았다며 혼자 귀가하신 엄마.

속삭이듯 말씀하신 장모와 고래고래 소리친 와이프 논쟁에도 곤히 잠을 주무시는 푸파파. 

당신의 넉살을 존경합니다!! 



( 에피소드 )


그러고 보니 2주 전 둘째랑 단 둘이 '사랑의 하츄핑'을 보러 간 푸파파.

이번엔 또 장모님과 영화를 보러 가게 됐네~~

하츄핑을 너무 감동해서 본 둘째가 과연 외할머니 취향 다큐 영화가 재밌을 리가 없었을 텐데 

끝까지 얌전히 봤다는 게 신기해서 둘째에게 물어봤다.


영화 재밌었어?
네가 보기엔 지루하고 이해 안 되는 어른 영화인데?!

응. 재미없었어!!
근데 할머니도 보고 아빠도 보니깐 끈기 있게 봤어!!

끈기도 알아?

응!! 어린이 집에서 가르쳐 줬어.
 끈기는 싫어도 끝까지 하는 걸 말한다고~~

둘째의 끈기도 존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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