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책, 그리고 어른의 시선

by 소금별

내 인생에서 책 읽기의 몰입감을 안겨 준 책을 꼽으라고 하면 두 권의 책이 떠오른다. 한 권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처음 몰입감에 빠져 읽었던 《폼페이의 최후》이다. 작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귀족 청년을 짝사랑하던 눈먼 꽃 파는 아가씨가 청년의 작은 호의를 사랑으로 착각하며 혼자만의 감정에 빠져든다는 이야기다. 폼페이의 화산이 폭발하여 도시가 불바다에 휩싸이던 순간,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며 그 청년을 구해냈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인어공주》의 한 장면을 떠올렸고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복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폼페이의 비극적인 결말 속에서도 그녀의 진심 어린 사랑은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때의 나는 사랑이란 그저 아름답고 순수한 감정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에 아픔과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또 한 권의 책에 빠져들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책이었는데 제제라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어 놓았다.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자라나는 제제는 가족의 사랑을 갈구하며, 외로움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런 제제가 라임 오렌지 나무와 친구가 되고 외로움을 달래기 시작한다. 제제의 아버지가 아이를 학대하는 장면이 충격적이어서 나는 그 책을 놓지 못한 채 끝까지 읽었다. 제제가 부디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왜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책을 읽으며 제제의 아픔에 공감했고, 어른들의 무심함에 분노를 느꼈다. 어른들의 세상이 너무나도 냉정하고 이기적이라고 느끼며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을 원망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이제 제제가 원망했던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어른의 시선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폼페이의 최후》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그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성장시킨 중요한 책이었다. 책 속에서 느낀 감정들은 나의 어린 시절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지금의 나를 이루는 소중한 조각이 되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때의 마음을 기억한다. 눈이 먼 노예 소녀의 헌신적인 사랑과 제제의 고독한 외침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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