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도서관에서 꽃차 인문학 수업이 있었다. 비라도 내릴 듯 흐린 하늘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날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테이블보에 도라지정과와 꽃증편, 자그마한 잔이 예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정갈한 다과를 보니 서둘러 온 마음이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자리에 앉자 목련과 페퍼민트를 우린 차가 나왔다. 차를 마시기 전에 코에 찻잔을 가져가서 냄새를 맡아보니 허브향이 났다. 한 모금을 마시자 페퍼민트 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향이 강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두 번째로 마신 차는 마리골드 꽃차였다. 보통 메리골드라고 부르는데 식약청에 마리골드라고 등록되어 있어서 꽃차 이름을 마리골드라고 써야 한다고 했다. 마리골드 꽃차는 처음에 마신 꽃차에 비해 맛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몇 잔을 연거푸 마셨는지 모르겠다. 강의를 들으면서 도라지정과를 예쁜 포크로 집어서 먹어보고 마리골드 꽃차도 마시는데 왠지 우아한 조선시대 여인이 된 느낌이었다.
꽃차 수업은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차를 만드는 덖음 과정은 불에 올렸다가 식히고 다시 올렸다가 식히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인데 이게 차의 제다법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가마솥 뚜껑을 이용해 꽃을 덖었지만, 요즘에는 꽃차 팬을 사용해 더욱 손쉽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시간과 정성을 담아야 하는 꽃차의 덖음 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지만 5번 정도 반복해줘야 하는 덖음 과정과 꽃을 말리는 수고로운 과정을 내가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마리골드 꽃차를 사서 마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이란 이렇게 수고로운 거구나!’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도라지정과도 예뻤지만 딜과 수레국화로 예쁘게 꽃 모양을 만든 증편은 작은 예술 작품 같았다. 다과와 함께 마리골드 꽃차가 곁들여졌는데, 그 은은한 향과 따뜻한 기운이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다. 차의 역사와 다양한 꽃차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꽃들이 이렇게 예쁜 꽃차로 되살아난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꽃차가 커피와 달리 느긋함과 여유를 준다는 강사님의 말이 와닿았다.
수업 중에 소개된 꽃차는 정말 다양했다. 캐모마일, 작약, 도라지, 연꽃, 장미, 황화 코스모스 등 이름만 들어도 꽃의 색과 향이 떠오르는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도라지 꽃차는 기관지 건강에 좋다고 했고, 캐모마일 꽃차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작약 꽃차는 진통과 진정 효과가 있어 항암에 좋고, 연꽃차는 혈액 순환을 도와준다니 그 깊은 의미가 느껴졌다. 요즘 많이 보이는 황화 코스모스는 멕시코가 원산지라는데 맛은 쓰고 차갑다고 했다.
커피를 마실 때 느껴지는 텁텁함과 달리 꽃차는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나 마리골드 꽃차의 지용성 성분은 식후에 마시기 좋고, 루테인과 지아잔틴 등의 성분이 풍부하여 건강에도 이롭다고 하니, 이 꽃차가 가진 매력이 다채로웠다. 꽃차는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니다. 그 속에는 자연의 시간과 사람의 정성이 담겨 있고, 그 여유로운 템포가 일상에 한결 느긋한 순간을 갖게 한다. 꽃이 피어나듯 차 한 잔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는 마음속에 작은 평온을 심어주고 그 맛은 입안에 봄날의 산들바람을 일게 한다. 깊어가는 가을에 꽃차 한 잔 마시는 여유가 좋아서인지 걷는 내내 콧노래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