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산책

by 소금별

어느 저녁, 비가 내리는지라 조금 쌀쌀하지 않을까 싶어 아이에게 물었다. "산책 나갈까?" 아이는 망설임 없이 줄넘기를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긴 장대 우산을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리진 않았지만, 우산 없이 걷기엔 감기에 걸릴 것 같은 날씨였다. 아이는 괜찮다며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줄넘기를 뛰기 시작했다. 며칠 전 이단 뛰기를 성공한 아이는 열 번을 넘어보겠다고 열심히 연습 중이다. 그 아이의 작은 도전이 기특했다.

아파트를 한 바퀴 돌고 옆 공원으로 넘어가자, 바람이 강하게 불어 장대 우산이 휘청거렸다. 나는 우산이 뒤집어 질까 봐 손에 힘을 주어 꼭 잡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어깨를 살포시 감쌌다. 저녁을 먹고 두 시간 동안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 아이는 산책을 선택했다.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스스로 고민하는 아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저녁을 먹고 나면 만 보를 채우기 위해 산책을 나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설거지를 얼른 마치고 아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이 이제는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아들과 함께 걷는 이 시간이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내 마음속엔 작은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설렘이 가득한 일이 된 것이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행복할까?’ 아이와의 산책으로 고된 하루의 피로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아이와 산책하다가 아파트 화단에 만개한 매화꽃을 발견했다. 우리는 동시에 코를 킁킁거렸다. "엄마, 비가 오니까 매화향이 더 진하게 나는 것 같아." 아이의 말에 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봉우리가 단단히 맺혀 있던 매화는 어느새 하얀 꽃잎을 펼치며 봄밤을 환하게 밝혔다. 비 내리는 저녁, 어깨를 맞대고 우산을 나란히 쓰고 걷는 우리 모자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보내는 이 시간이 나는 참 좋다. 키가 훌쩍 커버린 아들과의 산책은 단순한 걸음이 아니라, 우리 둘 사이를 연결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요즘은 나보다도 크고 성숙해진 아이가, 여전히 어린 시절처럼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봄밤, 비 오는 거리를 함께 걷는 이 시간 속에서 아이와 나누는 사소한 대화들, 자연스럽게 흐르는 웃음소리.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내 마음을 가장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두런두런 이어진 대화 속에 비가 스며들고, 매화향이 물들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었다.

이전 06화필사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