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필사가 유행이다. 성경책 필사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시나, 소설, 수필 등 문학 방면으로 필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내가 처음 필사를 하게 된 것은 코로나 시국에 온라인 수업을 접하면서부터다. 책을 읽고 필사하기, 칼럼 필사하기, 주어진 문장 필사하기 등 다양한 수업을 들으면서 필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렇게 필사한 노트가 몇 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모인 필사노트가 이제 나의 보물이 되었다.
처음에는 김애란의 「칼자국」을 읽으면서 필사했는데 그림까지 그렸다. 그만큼 필사가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칼럼을 필사하면서도 그림을 그렸고 매일 행해지는 이 행위들은 코로나 우울증을 싹 가시게 만들었다. 이때 다양한 칼럼을 읽으면서 칼럼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김훈 작가도 알게 되었다. 기자였다고 하는데 글에서 결단력이 느껴졌고 문장이 군더더기없이 매끄러웠다. 김애란 작가도 이때 알게 된 작가인데 문장이 탁월했다. 직접 만든 노트에 필사를 하기도 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사온 작은 노트에 필사를 하기도 했다. 다양한 필기구로 노트에 필사를 할 때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러다보니 노트와 펜 부심이 커졌다. 비싼 만년필은 사지 못했지만 만년필을 사서 써보기도 했다. 지금은 쓸 때 느낌이 좋은 펜으로 필사를 한다. 필사를 하면 어지럽던 마음이 한곳에 모이는 느낌이다.
코로나 시국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매일 집에서 은둔하며 줌수업을 들었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나도 남편도 별일 아니면 집콕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한 일상에 필사는 내게 숨을 쉬는 숨구멍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코로나 시국을 보내고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읽으면서 책 전체를 필사했고 이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필사했다. 지금은 윤동주의 시집 「서시」를 한 꼭지씩 필사하고 있지만 바쁜 일상으로 매일 하지는 못한다. 근래에는 이기주의 「그리다가, 뭉클」에 딸려온 필사집을 필사해보고 있다. 작가들에게는 필사노트가 재산이라고 한다. 그 생각으로 필사를 하는 건 아니지만 필사한 노트들은 나에게 소중한 보물이다.
필사는 책 내용을 막연하게 베껴 쓰는 행동이 아니다.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 「필경사 바틀비」가 문득 생각이 난다. 변호사의 일을 돕기 위해 고용된 바틀비는 일하기를 거부하고, 사무실을 떠나기를 거부하고, 끝내 먹는 것조차 거부하고 굶어 죽는다. 필경사는 수많은 서류 작업이나 심부름을 대신해주는 필기 노동자다. 그러고 보면 작가를 쓰기 노동자라고 표현했던 말이 떠오른다. 바틀비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필사하면 「필경사 바틀비」가 떠오른다. 필사의 매력을 느끼면서 필사하려고 구입한 노트가 저렇게 쌓여가는데 난 언제쯤 저 노트들을 다 채울까? 문득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