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소식이 있었으나 오전 날씨는 맑았다. 도서관을 향해 사뿐사뿐 걷는 발걸음이 나쁘지 않았다. 드로잉 수업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도 내 마음은 맑은 봄날씨였다. 창문으로 들이치는 따듯한 햇살, 도서관의 분위기, 느낌이 좋은 푹신한 쇼파가 마음을 몽글몽글 피어오르게 했다. 그 마음도 잠시,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마음이 울울해졌다. 손을 열심히 흔들었음에도 버스는 무심하게 나를 지나쳤다. 이게 뭐라고 내 마음을 파동치게 하지! 잔잔한 호수같은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통복시장에서 내려 얼마 전에 알게 된 보리밥집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가끔 가던 칼국수 집에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문을 열었나?’ 맑은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조금씩 거뭇해지는 하늘을 보니 수제비가 먹고 싶어진다.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칼국수를 먹는 사람, 수제비를 먹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뭘 시킬까 고민도 없이 “여기 수제비요.”라고 말한다. 자리에 앉아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거리낌없이 일어서서 밑반찬을 가져온다. 밑반찬이라고 해봐야 노란 단무지와 김치뿐이지만 수제비에 이것 이상으로 어울릴 수 있는 반찬은 없을 것이다. 혼자 앉아서 먹어도 아무렇지 않을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쳐다본다.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은 거뭇한 것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수제비 나왔어요.” 잠시 상념에 젖어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제비가 나왔다.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이 데일세라 후후 불어본다. 따끈한 연기가 얼굴에 달라붙는다. 문득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함께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수제비는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처럼 나에겐 소울푸드다. 어릴 적 엄마가 끓여줘서 자주 먹기도 했지만 함께 만들던 그 추억이 내 안 어딘가에 있었나보다. 어른이 되어서는 엄마와 자주 시장에 다녔고 시장 수제비는 이천 원이었다. 퇴근하면서 마음이 공허한 날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늘 시장에 가서 수제비 먹을까?” 그러면 엄마는 시장으로 나왔고 우리는 시장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목욕탕 의자에 앉아 수제비를 먹었다. 커다란 대접에 가득 담아주고도 더 먹고 싶으면 공짜로 그만큼을 듬뿍듬뿍 퍼주곤 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시장 인심이, 사람 인심이 후했는데 갈수록 각박해지는 느낌이 거미줄처럼 엉겨가는 내 마음 같다. 마음에 온기가 필요할 때 나는 수제비를 먹으러 간다. 오늘도 뜨끈한 수제비 한 그릇을 후후 불면서 배불리 먹었다. ‘엄마는 뭘 하고 있으려나!’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해봐야겠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더 어두컴컴해지고 쌀쌀해졌다. 배가 부르니 그마저도 행복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다.
평택역 근처를 걷는다. 오후 수업이 있었고 이날 난 난생처음 재봉틀을 배웠다. 서툰 재봉질이 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 주저하는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서툰 것보다는 잘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 나를 닮았구나! 통복시장에서 사온 닭강정을 아이들에게 내밀면서 “엄마가 슬퍼서 닭강정을 사왔어!”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닭강정에만 반응한다. “두 아들 엄마의 슬픔에 반응 좀 해주면 안되겠니?” 오늘 내 마음은 변덕스런 봄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