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미술관에 다녀와서
그림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나는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사실 좋아할 뿐이지 현실적으로 자주 가지는 못한다. 아직 아이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뚜벅이인지라 미술관에 가려면 늘 옆지기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남편 도움없이 소마미술관에 갈 일이 생겨서 비오는 날 소풍가듯 다녀왔다.
소마미술관은 몇 년 전 아이들과 몽촌토성에 갔을 때 스쳐 지나갔던 곳이다. 들어가고 싶었지만 걷느라 지친 아이들에게 미술관까지 가자고는 할 수 없었다. 소마미술관을 알게 된 것은 코로나 시국 비대면 키트를 통해서이다. 선착순 200명에 도전했지만 매번 떨어진 경험이 있어서 내 뇌리에 각인된 미술관이었다. 이번에 예술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는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마미술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소마미술관은 올림픽공원과 인접해있고 아이들과 갔었던 몽촌토성, 한성백제박물관과도 가까웠다. 나는 이 송파구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지금 소마미술관에서는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 전시회를 하고 있다. 서울올림픽 개최 35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전시회라고 한다. 1920년대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르기까지 근현대미술을 한 곳에서 접해볼 수 있는 전시회란다. 비오는 날이라 관람객이 적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여지없이 예술을 향유하고 있었다. 오전 11시에 도슨트 해설이 있다고 해서 먼저 휘리릭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번 전시회에 무려 25인의 작가 그림들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보통 전시회라고 하면 한 곳에서 대여를 하기 마련인데 이번 전시회는 이례적으로 여러 곳에서 작품을 대여받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는 5개의 소주제로 나뉘어 열리고 있었는데 1전시실에서는 <우리 땅, 민족의 노래>라는 주제로 장욱진의 「가족」, 박생광의 「꿏가마」 등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비싸다는 박수근의 그림들도 운좋게 볼 수 있었다. 2전시실에서는 이쾌대의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이라는 주제여서 디아스포라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자의적,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분단의 미술사라고 할 수 있는데 6.25전쟁을 겪으면서 월북작가가 형성되었고 그들의 그림들이 금기시되었다가 풀렸다고 한다. 이쾌대나 변월룡같은 화가의 그림들이 그렇다. 이쾌대의 작품은 BTS 멤버인 RM으로 인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3전시실에서는 나혜석, 박래현을 비롯한 여성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출품 작가 모두 험난한 해외 유학의 길을 걸었고, 결혼과 육아, 가사 등의 고난과 굴곡을 딛고 일어선 여성들인지라 더 의미가 깊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한국의 동양화가인 박래현을 알게 되었다. 김기창 화백의 부인이고 선전에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했다는 것과 그의 작품인 ’달밤‘도 알게 되었다. 이밖에도 추상화가인 김환기와 유영국, 이응노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었다.
한 바퀴 휘리릭 돌고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더 자세하게 알아갈 수 있었는데 그림은 늘 새로움의 발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 봤다고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인성 화가를 비롯한 이쾌대, 배운성 등 대단한 화가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배운성 화가는 한국인 최초로 유럽에서 미술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먼지를 뒤집어쓴 그의 그림들이 대거 발견되면서 알려졌다고 한다. 한국의 프리다 칼로로 불릴 만큼 아픔이 많은 천경자 화가의 그림들도 내 생애 처음으로 만났다. 초원의 코끼리 위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5전시실에서는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RM이 소장한 권진규 작픔도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조각가는 문신이다. 소마미술관 야외에 그의 조각품이 세워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오는 길에 그의 조각품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참, 이번 전시회에서 우연히 황용엽 작가님을 뵐 수 있었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분이라고 한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 얘길 했더니 기념사진을 왜 찍지 않았냐고 핀잔을 준다.
그림은 알게 될수록 참 신기한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고 알면 알수록 궁금증이 생긴다. 한 시간 정도 도슨트를 따라 다니면서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제야 그림들이 새롭게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기분이다. 비가 오는 날 버스를 타고 소풍가는 기분으로 즐겁게 미술관 여행을 하고 왔다. 기념으로 작은 노트를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 내 안에는 그날 보았던 그림들이 둥둥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