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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별 Oct 25. 2024

풀떼기가 아닌 나의 반려자


우리 집에는 감나무, 율마, 산세베리아, 스투키, 홍콩야자, 아레카야자, 몬스테라, 유칼립투스 등 여러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식물이 있어서 아이들 표현으로는 베란다가 ‘숲’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 집에 온 식물들은 나름대로 사연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 코로나가 터지기 전, 이곳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걷기대회 행사를 했다. 식목일과 거의 비슷했으므로 식물들을 나눠주었는데 그때 받은 식물이 감나무와 매실나무였다. 아파트라 마땅히 키울 곳이 없어서 큰 화분에 심었더니 매실나무는 1년 지나 죽어버렸고, 지금은 감나무 두 그루가 남아있다. 감나무는 햇빛이 부족한 탓인지 해마다 꽃을 피우지 못한다. 사실 이사를 할 때, 나무를 두고 가야 할지 아니면 데려가야 할지 고민했다. 키우던 식물을 버리고 가야 하나 싶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옮겨주었다. 하지만 감나무는 여전히 꽃을 피우지 못하고 가을이 되도록 나뭇잎만 매달고 있으니 마음이 애처롭다.     

산세베리아와 스투키도 감나무와 함께 받아온 아이들이다. 비가 오는 날, 아이와 함께 행사장에 가서 국수를 먹고 식물도 받아서 낑낑거리며 들고 왔었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식물을 안고 낑낑거리며 왔더니 남편이 핀잔을 주었다. “왜 그렇게 식물 욕심이 많아.”하고 말이다. 지금 우리 집에는 그날 들고 온 산세베리아와 스투키도 쑥쑥 자라고 있다.      


내가 애정하는 율마는 세 그루가 베란다에서 자라고 있다. 몇 년 전 세계꽃식물원에 가서 ‘윌마’라고 쓰여있는 식물을 알게 되었다. 잎이 연두빛을 띄는 것이 피톤치드 향까지 나고 쓰다듬었더니 보드랍기까지! ‘이름이 뭐지?’ 하고 봤더니 윌마였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율마라고 나왔다. 나는 이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운명처럼 율마를 만나게 되었다. 시에서 주체한 달팽이 마라톤대회를 남편과 참여했는데 식물까지 준다는 것이다. 나는 이게 무슨 횡재인가 싶었다. 우리는 달팽이처럼 느리게 부락산을 걷고 와서 식물을 받았다. 식물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나는 다른 식물을 거절하고 율마를 달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율마 두 그루를 받아서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왔다. 율마는 무척 예민한 식물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행여 죽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다행히 죽지 않고 잘 자라주고 있다.      


이 밖에 유칼립투스, 스파트필름, 호야, 스킨답서스, 다양한 선인장과 다육이 등 우리 집에 있는 식물들은 다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애들 아빠는 그 식물들을 ‘풀떼기’라고 부르지만 나에게 그 식물들은 특별한 반려자이다. 지금도 다양한 식물 수업을 들으면서 화분들이 늘어나고 있고 때론 애들 아빠의 눈총도 받지만 어쩌랴! 이 아이들은 풀떼기가 아니라 나의 반려자인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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