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주 화가의 달동네 그림을 보고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 마을에 하나둘씩 백열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높은 지대에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얼기설기 세운 집들에 저마다의 온기가 가득 퍼진다. 옆집에선 저녁밥 짓는 소리가 들려오고, 건넛집에서는 두런두런 대화가 오가며 한 마을이 하나의 큰 집안처럼 살아간다. 시나브로 어둠이 내려앉으면 좁은 골목길을 하늘을 날듯 쏘다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잦아든다. 개 짖는 소리만이 이 정적을 가로지르며 밤의 시작을 알린다.
마을은 낮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빛나고, 별처럼 반짝이는 백열등의 불빛이 마을을 노랗게 밝힌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연탄 리어카조차 들어설 수 없는 이곳을 사람들은 ‘달동네’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저 고향이자 삶의 터전일 뿐이었다. 불편함과 부족함이 많았던 시절이지만 우리는 서로의 가난을 나눴다. 쌀이 없으면 옆집 문을 두드리며 쌀 한 됫박을 빌리고, 아침에 아이들이 학용품 사야 한다고 보채면 그 옆집에 가서 돈을 빌렸다. 서로 궁색했지만 나누기엔 인색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가난이 정겨운 것이 아니라, 그 시절엔 삶의 부족함도 함께 견디며 다정히 나누는 온정이 존재했다.
그 시절이 점점 더 그리워지는 것은, 그 온기와 정이 이제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흙을 밟고 골목을 뛰어다니며 자랐던 그 기억들은 이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져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그 골목은, 이제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한 번 사라진 것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콘크리트 회색 아파트가 줄지어 서고 반듯한 도로가 깔린 이곳에서, 그 좁은 골목길과 마을의 정을 떠올린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기계화된 안내 방송만 들리는 이곳에서 그 시절의 따듯한 그리움을 떠올려본다. 박완서의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제목처럼 그 많고 많았던 골목길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