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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별 Oct 26. 2024

빛과 색으로 그려낸 감동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탐방기

며칠 이어지던 장마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던 행운 같은 날, 파주에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가게 되었다. 2009년 완공된 이 미술관은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운영하고 있고, 포르투칼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를 맡았다고 한다. 관광버스에서 나눠 준 탐플렛을 통해 알바루 시자와 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두 개의 전시에 대해서 미리 알 수 있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미술관으로 가는 길, 먹구름이 걷힌 드높은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유영하고 있었다.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푸른 물감을 뿌린 듯 눈부신 하늘 아래 초록초록한 정원과 함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밋밋한 사각형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부드러운 곡선의 이음새가 푸른 하늘을 감싸 안고 있으니 그 자체가 바로 그림이었다.      



1층에는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책들의 표지화가 전시되고 있었다. 김윤석 화가의 도스토옙스키의 초상화 연작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죄와 벌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의 작품을 남긴 대문호의 초상화와 그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책 속의 장면들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낙범 화가의 프로이트 연작은 색채를 언어화한 모노크롬 기법을 썼다는데 집에 와서 모노크롬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하나의 색상 또는 그라데이션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라고 한다. 인간의 심리를 연구한 프로이트에게 맞는 기법이라는 생각에 그림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쿠바 화가인 아후벨의 화려한 색채가 인상적인 그림에는 달이 공통적으로 등장했다. 달은 같은 하늘 아래 볼라뇨 작품이 하나로 연결된 것을 상징한다. ‘열린책들’은 볼라뇨 컬렉션을 내면서 아후벨에게 표지화를 맡겼다고 하는데 왜 달이 등장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의 그림 중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참을 수 없는 가우초>였다. 그림을 보면 눈이 빨간 커다란 토끼가 있는데 가만히 보면 그 토끼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유령처럼 나오는 모습이다. 작은 기차가 불을 밝히며 달리고 있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토끼들이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가우초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목동’을 뜻한다고 했다.


      



2, 3층에서는 안두진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작가는 주인없는 그리기로 자기의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이미지 안에서의 최소 입자를 뭉치고 조합해서 표현한다고 한다. 이 또한 작가가 발견한 새로운 기법이라고 한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이마쿼크>라는 다소 생경한 단어도 접할 수 있었다. 작가는 형광색으로 베이스 작업을 해서 형광색과 원색의 충돌을 표현했고 물감 물성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0호와 1호붓으로 그렸다고 했다. 그 자잘하게 표현된 것들이 숲이 되고 땅이 되고 바위가 되고 또 바위는 공중부양이라도 하듯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작품 이름들도 어떤 것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쿵! 찌익, 쉿!, 촤락 등 물감의 운동을 표현했다.      




작가는 이마쿼크를 통해 우리 앞에 놓여있는 그림들을 완성하고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고전회화든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든 모든 그림은 관람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다시 그림들을 보니 블록을 쌓듯 작은 붓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대상에 대한 묘사보다 물감의 운동에 집중하며 형태를 이룬 것처럼 우리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 사회라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에 가면 인공조명들이 기계처럼 그림들을 비추고 있었는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은 이중지붕으로 자연광을 이용했다는 점이 특이했다. 가급적 인조광을 배제하고 자연광을 끌어들여 은은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빛의 향연이 그림들을 더 돋보이게 했다. 건축의 공간이 돋보이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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