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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cey J Feb 21. 2024

가장 중요한 것

숫타니파타,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따라

혼자 해온 명상이 나아가고 있지 않음을 느낀 지 꽤 되었다.

몇 년전에 1970년대 설립되어 역사가 깊은 한 미국의 요가단체에서 명상을 배우고 그 방식대로 실천해왔다.

그 단체의 스와미, 즉 남성과 여성 지도자분들은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수행하는 불교로 치면 비구, 비구니같은 분들이다. 그 곳에서의 스승과 제자 인연으로 때때로 지도를 받고자 찾는 선생님이 계시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동안 쉽게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에 읽은 숫타니파타 책이 다시 들어왔다.

초기 불교의 경전, 숫타니파타.

팔리어로 '경전의 모음'이란 뜻으로, 부처님의 제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내려온 부처님의 생전 가르침이 생생히 담겨 있는 초기 불교의 기록이다. 우리에게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유명한 문장이 숫타니파타의 1장에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숫타니파타는 총 5장, 약 1000여개의 짤막한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읽기 어렵지 않은 문장들 속에 전해지는 부처님의 깊은 사유와 통찰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특히 4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원시불교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4장 8편의 시 (8게송) 중 '늙음'에 대한 시들을 소개한다.


사람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물건 때문에 근심한다.

자기가 소유한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 것은 모두 변하고 없어지는 것으로 알아

집에 머물러 있지 말아라.


사람이 ‘이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물건

그것은 그 사람이 죽음으로써 잃게 된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현명하게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이를 테면 잠이 깬 사람은 꿈 속에서 만난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죽어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권세가 있던 사람도 한번 죽은 후에는 그 이름만이 남을 뿐이다.


내 것이라 집착하여 욕심 부리는 사람은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평안을 얻는 성인들은 모든 소유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세상에서 물러나 수행을 닦는 사람은 멀리 떨어진 곳을 즐겨 찾는다.

그가 생존의 영역 속에 자기를 집어넣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성인은 어떤 곳에도 머무르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

또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않는다.

마치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연꽃 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이

성인은 보고 배우고 생각한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것에 기대어 깨끗해지려 하지 않는다.

그는 탐내지 않고, 탐욕에서 떠나려 하지도 않는다.





카톨릭 집안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당연한 듯 성당에 줄곧 다녔었던 나는 환경적으로 불교를 제대로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한국의 사찰을 즐겨 찾고 기회가 되면 불교 관련된 책을 읽어왔다. 절대자에 의지하기보다 나 자신을 철저하게 탐구하여 해답을 찾는다는 불교는 방대하게 느껴졌지만 매력적이었다. 영어권 국가에 주로 살다보니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해석한 불교와 명상법을 주로 접해왔고 (Mindfulness), 미국에서 설립된 기관에서 인도의 요가철학에 기반한 명상을 공부하여 몇 년 전에 지도자 과정를 마쳤다.

그러나 무언가 비어있었다. 삶과 수행의 중심을 보다 굳건하게 다지고 싶었다.

집에 있는 불교 관련된 책들을 다시 읽어보며 나아가 부처님 생전의 가르침이 어떻게 남방 불교, 북방 불교로 다르게 전파되었으며 그 차이는 무엇인지, 서양으로 어떻게 전해졌는지, 인도에서 불교는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발동된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보게 되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에서 불교가 몰락하기 전 스리랑카로 전해지고 후에 미얀마, 티베트 등으로 전파된 것이 남방 불교다. 중국을 통해 한국, 일본에 퍼진 북방 불교와 달리 위빠사나 명상 수행을 통해 해탈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 위빠사나를 전통 불교방식으로 새로이 배우고 싶었다. 서구권에 맞게 각색된 것이 아닌 오리지널한 방식으로 배워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요즘 나는 테라와다 불교(남방 불교)의 본고장인 스리랑카에서 오신 반테(Bhante, 스님)에게 직접 명상 지도를 받고 있다.


스님이 투박한 영어로 내게 처음 한 말은,

"지금까지 당신이 이것저것 배워서 안다고 여기는 마음, 그리고 남을 가르치려 하는 마음을 다 버리시오."

영어권의 스와미나 선생님들이 이끄는 명상 모임 또는 클래스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직설적인 말이었다.

스님의 온화하게 빛나는 눈을 보며 정신이 확 들었지만 동시에 반발심, 나를 변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언제 남을 가르치려 했다고 하시지? 한번도 그런 언행을 한 적이 없는데?'

기회가 되면 어떻게든 변명하고 싶었다. 스님, 전 아니에요, 그런 마음 가지고 있지 않아요.

당시는 할말을 못해서 아쉬웠으나, 참 다행스럽게도 구질한 변명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스님이 자애 명상(Loving Kindness meditation)을 알려주실 때 속으로 또 '이건 몇 년 내내 해온 명상이고 이미 다 아는 것이다'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기존의 자애 명상과 내용은 같았지만 암송하는 문장이 달랐다. 마치 4절 5절까지 이어지는 노래처럼 계속 외워서 부르는 만트라를 아침 저녁 좌선은 물론이고 일상에서 여러 번씩 암송하고 명상하라 하셨다.


May I be free from anger

May I be free from evil

May I be free from jealousy

May I be free from mental suffering

May I be free from physical suffering


May all in this house be free from anger

May all in this house be free from evil

May all in this house be free from jealousy

May all in this house be free from mental suffering

May all in this house be free from physical suffering


May all in this town be free from anger

May all in this town be free from evil

May all in this town be free from jealousy

May all in this town be free from mental suffering

May all in this town be free from physical suffering


town, county, state, country 그리고 world까지 범위가 넓어지며 암송은 계속된다.

호흡법, 명상법, 경전같이 내가 스님께 배우고자 하는 지식을 취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소양을 다지는 것이다. 스님이 보시기에 녹여내야 할 단단한 업장이 많아 보였을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애 명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외우며 때로 눈물이 나기도 가슴 속이 뜨거워지기도 하였다.

뭔가 새로웠다. 안다고 생각해온 것과 달랐다.

또 생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스님이 처음 나에게 하셨던 말은 변명할 여지없이 맞는 말씀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하리라. 결심이 섰다.  

불교에서는 여섯가지 감각기관(눈,귀,코,혀,피부,마음)이 각각의 대상을 통해 받는 자극으로 우리의 내면에 '느낌','생각','의지','판단'을 발생시키나, 그것은 실체와 관계없이 저마다의 개인이 만들어낸 허상이라 한다. 우리가 실체라 굳게 믿는 현실 세계도 꿈 속과 똑같은 저마다의 세상이다. 꿈과 현실 두 세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듯, 몸뚱아리 하나 벗어날 수 없는 처지지만 시시각각 바뀌는 생각, 감정에 붙들릴 때마다 공한 것임을 명확히 아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길이겠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은 그 길을 탐구해 왔으니 실로 다양한 종교, 이론, 수행법, 문학을 비롯한 예술작품들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 이 세상에 현재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함 그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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