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영운 Apr 08. 2024

아무리 아파도 _ 인 생

활착(活着) - 살아간다는 것

중국 작가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을 읽었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 위화의 <인생>은 눈물 없인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작가인 위화는 1993년에 <인생>을 발표했는데, 이를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화해 제4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해 더욱 유명해졌다.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미워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쓰고도 매운 인생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원문으로는 活着(활착)이라는 제목인데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한다.  <인생>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제목보다는 원문인 活着의 의미가 좋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렇다.

주인공인 푸구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한 명씩 죽어갈 때마다 너무나 슬펐는데, 나중에는 '푸구이 살생부'라는 단어가 생각날 정도로 너무하다 싶었다. 물론 그들의 죽음은 푸구이 탓은 아니었다. 오히려 푸구이는 그들을 먼저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때로는 마음이 아프지만 때로는 아주 안심이 돼. 우리 식구들 전부 내가 장례를 치러주고, 내 손으로 직접 묻어주지 않았나. 언젠가 내가 다리 뻗고 죽는 날이 와도 누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p278)


민요를 수집하는 내가 푸구이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푸구이는 자기네 소의 이름을 여러 개로 부른다.



"얼시! 유칭! 게으름 피워선 안 돼. 자전! 펑샤! 잘하는구나. 쿠건! 너도 잘한다."  (p20)

"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 봐 이름을 여러 개 불러서 속이는 거지. 다른 소도 밭을 갈고 있는 줄 알면 기분이 좋을 테니 밭도 신나게 갈지 않겠소?"  (p21)


책을 읽기 시작한 처음에는 어, 우리나라에도 저 비슷한 이야기 있는데 하면서 황희정승 일화를 떠올렸다. 황희정승이 밭에서 일하고 있던 농부에게 검은 소와 누렁소에게 누가 더 일을 잘하는지 큰 소리로 물었더니  농부가 굳이 가까이 와서 조용하게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었다. 아, 이 노인도 황희정승처럼 지혜로운 노인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얼시, 유칭, 자전, 펑샤, 쿠건은 푸구이 노인에겐 너무나 슬프고 그리운 이름들이었다.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화가 나고 슬펐던 부분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유칭이 헌혈을 해 주다 죽어가는 장면이었다. 유칭네 학교 교장이 아이를 낳다 피를 많이 흘려서 아이들이 헌혈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서로 헌혈을 하고 싶어 했는데 유칭도 마찬가지였다. 산모와 유칭의 혈액형이 일치하자 유칭의 피를 뽑기 시작했다.


그때 유칭은 이미 가망이 없는 상태였는데도, 의사는 여전히 피가 부족하다고 했지. 피를 뽑던 그 개 같은 놈은 얼마나 멍청한 녀석인지 내 아들 피를 싹 뽑아내고야 말았어.  유칭의 입술이 새파래졌는데도 그 자식은 멈추지 않고 계속 뽑아댔지. 유칭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당황해서 의사를 불러온 거야. 의사는 바닥에 주저앉아 청진기를 대보더니 이렇게 말했다더군.

"심장 박동이 완전히 멎었소."

의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 피를 뽑던 자식에게 욕이나 한마디 할뿐었지.

"정말 시끄럽게 구는군."

그러고는 곧장 현장의 아내를 구하러 분말실로 들어갔지.   (p187)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유칭은 알고 있었을까? 오 학년 밖에 안된 유칭이 알았을 리 없다. 신고 다니던 신발이 아까워 늘 품에 끼고 맨발로 달렸던 유칭의 인생은 이렇게 끝났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한 대목이다.


가족들이 모두 죽고 혼자 살아가면서도 푸구이는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돌아본다.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고, 그 뒤로는 점점 볼품없어졌지. 나는 그런 삶이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하네. 내 주변 사람들을 보게나. 룽얼과 춘성, 그들은 한바탕 위세를 떨치기는 했지만 제 명에 못 죽었지 않은가.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아옹다옹해봐야 자기 목숨이나 내놓게 될 뿐이라네. 나를 보게나. 말로 하자면 점점 꼴이 우스워졌지만 명줄은 얼마나 질기냔 말이야.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가 죽으면 또 하나가 죽고 그렇게 다 떠나갔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p278-279)


우리나라 드라마 <도깨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불멸의 삶을 살았던 김신은 과연 행복했을까?  죽을 수 없었던 김신은 어느 시대에 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눴을 것이다. 그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것을 지켜봤을 때 그는 과연 계속 행복할 수 있었을까?  푸구이는 자신의 인생을 평범하다고 자평했다. 그 시대에는 저 정도가 평범한 인생이었을까? 가족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은 세상에 살면서 평범하다니. 푸구이, 당신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까? 당신은 도대체 어떤 힘으로 그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겁니까?








 


작가의 이전글 다시 타임슬립_서녀명란전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