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니컬할 때가 아니다

by 행복한 의자

"제발 시니컬해지지 마세요"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가 프로그램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 토크쇼를 본 적도 없으며 그래서 진행자가 얼마나 유명한지 잘 모른다.

하지만 저 말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때론 유튜브 알고리즘이 소름 끼치지만 이번에는 내 가슴을 탁! 하니 치는 소름이었다.




나는 원래부터 긍정적이거나 밝은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별로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

타인에게 불친절을 받고 싶지도 않아 항상 적정선을 지키며 살아왔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면서 나의 시니컬한 태도는 더 강화된 거 같다.

어릴 때는 이런 방식의 사고가 더 멋지게 느껴졌다.

항상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남들과 다른 회의적인 분위기에서 나오는 언변이 뭔가를

통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니컬한 태도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우울한 기운과 만나

암울 그 자체의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뭔가를 도전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되겠어'

잘난 사람들이 많으면 더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을 해야지..

지금 생각하면 온통 변명거리만 찾았던 거 같다.

취업난이 심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는 나에게 시니컬한 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울한 기운을 더 오래 붙잡아 둘 뿐.

그래서 나는 나는 나의 20대가 싫다. 그렇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싫었다.

이후 취직하고 결혼하면서 이런 시기는 사라졌지만,

나의 저런 태도는 문득문득 튀어나왔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살았다.


그런데 이런 시니컬한 태도가 정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내 앞에 서 있기 시작한 후부터다.

이전까지는 잘 안 되는 일이 생겨 기분이 안 좋아져도 며칠씩 나의 골방에서 속상해하다

'아 이제 됐구나'싶어 질 때쯤 나와도 괜찮았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내면의 몹쓸 버릇은 이미 머리와 몸에 배어버려서 떼어내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돌보는 일은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마음이 튼튼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바람은 아이보다 나를 먼저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이는 말은 못 하지만 감정을 느끼고 분위기를 느낀다.

내가 골방에 빠져 있을 때는 아이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한참 바라보기도 하고, 평상시처럼 재잘거리지도 않는다.

내 마음도 건강하게 다스리지 못하면서

'마음이 튼튼한 아이로 키우겠다?'

욕심 많은 엄마의 헛된 바람일 뿐이었다.


아이는 내 마음에 해결되지 않은 엉망진창 된,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과거를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

어쩌면 그 문을 열고 과거의 나를 직시하여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도전의식이 생겼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혼자였으면 이런 변화와 마음의 도전을 쉽게 수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앞에서 나의 눈을 바라보고 나의 행동을 지켜보는

어린아이가 서 있다는 것이

나의 과거를 직시하게 만들고 나를 더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래 지금은 시니컬할 때가 아니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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