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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by 아마토르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눈은 떴지만 일어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힘든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모든 게 귀찮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야 하는데, 그 손짓조차 버겁다. 할 일은 분명 많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이런 말만 맴돈다.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를 때가 있다. 어쩌면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좀 알 것도 같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무기력함보다 죄책감이다.
‘내가 이렇게 늘어져 있어도 되는 걸까?’
‘나만 이러고 있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붙는다.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동안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애써 왔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언제나 뭔가 해내야 했고, 항상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쉬고 있을 때조차 '이 시간에 뭔가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조급함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그런 조급함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먼저 고장이 났다. 몸은 아직 버틸 수 있는데 마음이 먼저 멈추자고 했다. 그 신호를 무시한 채 달리다 나중엔 몸까지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그때 알았다. 하기 싫은 날이 오면, 그건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보내는 어떤 경고일 수 있다는 걸.

예전엔 그럴 때마다 억지로라도 뭔가 더 하려 했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이러면 안 되지’ 하며 마음을 몰아세웠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오히려 그냥 멈춘다. 모든 걸 내려놓는다. 성취도, 효율도 중요하지 않다. 그냥 무사히 하루를 넘어가는 게 목표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말이 쉽지, 정작 마음이 힘들 땐 그 쉬운 말조차 내게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민방위 훈련처럼 내가 나에게 허락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 멈춰 있어도 괜찮다고.

그렇게 나를 조금씩 놓아줄수록 희한하게도 마음은 다시 살아난다. 억지로 채찍질할 때는 버티는 데 급급했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는 순간, 의욕이 조용히 돌아오기 시작한다.

살면서 점점 더 느끼는 건 ‘잘 살아야 한다’보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더 오래 나를 지탱해 준다는 것이다.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인생의 답은 아니다. 멈춰서 숨 고르는 시간도 필요하다.

사람이 늘 뜨겁게만 살 수는 없다. 잠깐 식을 줄도 알아야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 내가 멈췄다고 해서 삶이 멈추는 건 아니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이 가라앉는다면,
억지로 끌어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감정을 조용히 바라보는 연습부터 시작해 보자. 그게 내가 배운, 그리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진짜 나를 살아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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