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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끊지 않은 이유

by 아마토르

아내는 지금도 “귀찮으면 며칠 동안 담배도 안 피우고, 마음만 먹으면 담배를 쉽게 끊을 것 같은데 안 끊어!”라고 말한다. 맞다. 금연 아파트가 되고, 여기저기 금연 장소가 많아지면서 신경이 쓰인다. 주말에는 귀찮아서 아예 집 밖을 나가지 않은 날도 많다. 내가 보기에도 당장 금연을 할만한데 왜 나는 담배를 끊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담배를 끊지 않는 이유는 단지 중독이나 습관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입생로랑’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한 담배다. 패션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담배 브랜드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담배 심부름도 하고 해서 솔, 88은 많이 접했지만, 검정색과 빨간색으로 디자인된 입생로랑은 나에게 새로운 발견이었다.

2학년이 되도록 나는 학교에 변변한 친구가 없었다. 그러던 내게 학교에서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던 친구가 나를 집으로 초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친구는 춤에 대해 일가견이 있던 아이였다. 인기 좀 있다는 친구가 나를 집으로 부르다니 내 인생에 이런 날이 다 있나 싶었다.

집으로 나와 몇몇 아이들을 불러서 그 친구가 한 일은 ‘런던 나이트(London Nights)’라는 팝송을 들려준 것이다. 샬라살랴 들리는 가사 중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가사는 런던 나이트뿐이었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따라 해 보라고 권했다. 물론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엉덩이에 힘을 주며 나서기를 주저했지만. 아무튼 그 친구는 이제 동요를 벗어나 가요를 듣기 시작한 내게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 친구는 내게 집 앞 어딘가를 말해주며 ‘입생로랑’ 담배를 사 오라고 했다. 당시는 아이들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일상이어서 손쉽게 담배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날 인생 처음으로 흡연을 하게 됐다.

그 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흡연을 했다. 안다. 비겁한 변명이라는 것을. 그래도 학생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건 알았는지 동네 구석구석 후미진 곳을 잘 찾아다녔다. 다행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3년 내내 학교에 붙잡혀 사느라 어른들 눈을 피해 흡연을 할 시간이 없었다. 강제 금연을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법적 성인이 된 시점부터 다시 끽연 생활은 이어졌다. 술집, 당구장, 골목길, 차 안, 방 안, 세상 모든 곳이 나의 흡연 공간이었다. 다시 금연을 시도하게 된 것은 아내와의 연애, 그리고 결혼이었다. 냄새에 민감한 아내는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싫어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짓을 굳이 할 필요가 없기에 나는 냄새가 덜한 담배를 태우다가 이후 한동안 금연을 했다.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된 것은 아내와 말싸움을 한 후였다. 서로 자존심 상하는 말을 주고받았다.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나는 차에서 내려 라이터와 담배 한 갑을 샀다. 그리고 길모퉁이에서 불을 붙였다. 연기가 목을 타고 폐로 들어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뭔가를 잊은 듯 덜 상처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너지는 걸 막아주는 건 담배 한 모금이었다. 돌아오는 내 손에는 담배와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다시 담배 피우면 헤어지겠다고 말한 아내에게 그러라고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흡연자가 됐다.


담배를 끊지 않은 이유를 내 기억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들이 존재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포장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이유인 것 같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를 위한 변명을 해 보겠다.

첫째, 담배는 나의 회피처였다. 감정이 넘칠 때, 사람과 부딪힐 때, 억울하거나 좌절감이 들 때, 나는 흡연구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나만의 은신처였고,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 안전지대였다. 담배는 내 기분을 일시적으로라도 평온하게 만들었다. 흡입하고 내뱉는 행위가 숨쉬기조차 버거운 감정을 환기시키는 리듬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흡연은 감정을 다스리는 수단이 되었다.

둘째, 담배는 연결의 매개였다. 직장인 시절, 흡연실은 사교장이었다. 정식 회의보다 진솔한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 흡연을 함께하는 상사와 동료들은 유대감이 깊었다. 거기서 들은 말 한마디, 무심한 조언 하나가 나를 버티게 했다. 그곳에서 나는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느꼈고, 그것은 니코틴 충전 이상의 의미였다.

셋째, 담배는 나를 재정비하는 의식이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나는 종종 혼자 바람을 쐬며 담배를 피웠다. 말없이 불을 붙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그 몇 분 동안 머릿속은 정리되고 마음은 다잡아졌다. 퇴사를 고민하던 밤도, 필리핀 어학연수를 결심하던 날도, 나는 혼자 담배를 피우며 나와 대화를 나눴다. 담배 연기 속에서 나는 진지하게 나를 마주했다.

사실 나는 '담배'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위로'에 중독된 건지도 모른다. 담배가 주는 건 니코틴이 아니라, 순간의 침묵이다.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 고요...

하지만 이건 진짜 위로가 아니다. 연기가 걷히면, 상처는 더 짙어진다. 나는 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담배를 놓아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담배로 감춰왔던 감정을 언어로 꺼내고 그 고통을 껴안아야 할 때가 왔다는 신호다.

전자담배로 바꾸긴 했지만 나는 아직 담배를 끊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담배를 본다. 그것이 나를 지켜준 시절이 있었음을 인정하되,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더 이상 회피가 아닌, 직면으로.
중독이 아닌, 자각으로.

나에게 진짜 필요한 건 연기가 아니라,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끝으로, 오늘 글은 흡연을 미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중학교 2학년 때로 돌아가 나에게 말하고 싶다.
“너는 거부할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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